▲ 최 은 순 보령예지회 회원

그곳에 가면
내 유년의 시절, 가난했지만 부끄럽지 않게 자식들을 위해 열심히 장사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지금의 한내시장, 반찬가게 골목 한 귀퉁이에서 조그마한 좌판위에 갖가지 채소들과 담근 김치 몇 종류. 그리고 새벽 내 장사 준비하시느라 편한 잠 제대로 못 주무신 어머니의 고단한 삶까지 담아 몇 다라 펼쳐 놓고 손님의 손길을 기다리던 어머니.
학교 갔다 오면 대천극장 앞 공터에서 뛰어 놀다기 해질 무렵이 되면 다른 친구들은 엄마가 불러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갔다.
놀이터는 썰렁해지고 어느새 나는 혼자가 되어 어머니가 장사하시는 곳으로 돌아간다. 철없던 나는 좌판 옆에 앉아 집에 빨리 가자고 보채면 어머니는 채소를 다듬어 손톱 밑에 흙먼지가 끼어 있는 거칠어진 손으로 흐트러진 내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시며 주름진 미소로 나를 애잔하게 바라보신다.

그래 막내야 조금만 기다려, 이것마저 팔고가자.. 하시며 남은 물건을 떨기위해 손님들께 덤으로 듬뿍 얹혀 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그 당시 주소는 보령군 대천읍 대천리 209번지.
지금은 사라진 대천극장 근처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사십대까지 한내시장과 그 근처를 배경으로 성장하였고 결혼하여 보금자리를 이룬 생활의 터전이었다.

나는 대천을 떠나 본적이 없어 어쩌면 새롭게 펼쳐질지도 모를 타향에 대한 동경심으로 결혼 하면 대천을 떠나고 싶었지만 부모님과 형제자매를 떠난 타향살이가 서럽기만 하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타향살이가 외로울 것 같아 떠나질 못하고 내 동심이 살아 숨 쉬는 그 장터에 고향을 지켜보자며 둥지를 틀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께서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것을 보며 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셈을 일찍이 터득해서 똘똘하다는 칭찬도 들었던 것 같다.

취학 후 이론적으로 배우는 덧셈, 뺄셈, 곱하기, 나누기 등 산수공부 외에 천차만별의 다양한 손님들을 대하며 실전으로 더하기와 빼기 곱하기와 나누기의 셈본을 경험하며 나의 인생경영 철학과 시장경제원리를 익혀 나간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장터에서 사람공부도 어머니와 함께 배운 셈이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동서고금을 통해 자식교육에 온 정성과 열정을 다했던 어머니로 맹자의 어머니가 떠오른다.
맹자(孟子)의 어머니는 오직 자식의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 했다는 뜻으로 인간의 성장에서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가리키는 고사 성어이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맹모께서 두 번째 장터로 이사했을 때 맹자가 물건을 사고파는 장사꾼의 흉내를 내는 놀이를 하는 것을 보고 맹모는 이곳도 아이를 교육시킬 만한 곳이 못 된다 생각하여 학교근처로 이사하여 결국에는 맹자를 훌륭한 학자를 만들었다는 고사 성어. 우리어머니께서 삼천지교를 알고 계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의 공부방은 장터였다. 공부하며 성장해가는 환경이 어수선한 시장이었지만 나는 시장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물건을 팔을 때는 돈을 벌기위한 수단과 먹기 살기 위한 방편이라기보다 손님들께 친절하게 나의 진심을 다하여 물건을 팔아야 한다는 장사의 원칙도 배우며 익혀 지금까지 잘 활용하고 있다. 어머님은 우리에게 장사공부를 통해 고기를 낚는 방법을 교육시켜 주신 셈이다.
그곳에 가면 각박한 세상살이에 사람의 정이 물씬 묻어난다.
대형마트에서 판매 하는 물건들은 전자저울에 의해 한줌의 인정도 없이 마지막 단위인 원까지 에누리 없이 계산되지만 그곳에서는 넉넉한 물건위에 사람의 정까지 듬뿍 덤으로 얹혀 주셔서 이미 장바구니는 정으로 가득 찬다.
그곳에 가면 비릿한 생선 냄새와 갖가지 생물들이 갓 잡아 올린 듯 바다 냄새가 내 코끝으로 밀려온다. 좌판위에 싱싱하게 펼쳐져 있는 생선들을 보면 복잡한 세상일에 지쳐 고통스러울 때 생기를 되찾곤 한다.

‘정채봉님의 시“처럼 삶에 고통이 따르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세월이 지날수록 점차적으로 대형마트에 밀려서 쇠퇴해가는 모습을 보면 마치 어머니의 품속과 같은 내 고향 장터가 쇠락해 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이제는 전통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전통을 팔며 우리의 전통을 지켜가는 모습으로 거듭나 우리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그 시절의 번영을 누리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