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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 이사하는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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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지회 이 인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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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화창한 날 친정엄마가 이사하는 날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평생 사신다고 40여 년 전에 가족을 위해 튼튼하게 지으신 집이다. 하얀 블라우스에 멜빵바지를 입고 조그마한 계집아이가 중년의 나이로 들어선 추억과 그리움이 쌓인 곳이다.
어느 곳 하나 어머니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는 한옥집이다. 눈감고도 돌아다닐 정도로 쓸고 닦은 집. 양은냄비가 너무 닦아 얼굴이 보일 정도로 아니, 은냄비처럼 젊은 새댁의 모습이 숨겨져 있는 곳이다.
대문을 들어서니 팔순이 넘어선 엄마가 즐겁지만은 않으신지 역력히 주름진 얼굴에 윤기 없는 목소리에 물건을 싸는 일꾼들의 손길을 멈추고 멈추게만 하신다.
“할머니, 이렇게 하시면 일 못해요. 다 버리고 갈 것만 있구먼.” “가져가실 것만 말씀하세요.”
내가 들어서니 자기편을 만난 듯 반가워하시면서 네가 정리하라고 힘없는 웃음이 왠지 서글퍼보였다.
“엄마 이것도, 저것도 버리고 다 놓고 가요.”
가볍게 가자는 딸의 말에 더 섭섭함이 목소리에 배어 나오신다. 역정 섞인 음성이 빈 공간이 많아질수록 울림이 커져 어머니의 가슴속 심장까지 진동하는 듯 못내 서운해 하는 엄마를 모르는 체 눈을 마주치지 못하면서, “연세가 드시면 고집도 없어진다고 하는데, 엄마는 왜 그리 고집이 세. 내가 알아서 정리할게.”
그 연세에 뭐가 그리 살림살이가 필요하다고…….다 들고 갈 수 없으니 선택하라고 결국 고르신다. 빈집을 나서면서 뒤돌아보고 또 보시고 서운하신지 눈가가 빨개지는 걸 보니 마음이 저려온다.
“오랜 세월 고맙고 잘 있어. 그리고 아빠 안녕…….”
평생 당신의 젊음과 자식들의 어린 시절 추억이 그곳에 있는 곳이기에 그 발걸음이 엄마의 가슴에 디딤돌이 되어 놓아지는 것 같다.
몸이 불편하니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옮기자는 딸의 말에 허락을 하시곤 못내 결정을 잘 못한 것 같은지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시는 것 같다.
버리고 왔어도 40년 묵은 살림이 이다지도 많은지 엄마 모르게 정리됐다 싶어 보니 지치셨는지 모르는 체 해버리는 엄마를 보니 미안한 마음에, “엄마, 이제 쓸 것만 가지고 생활하고 건강만 챙기시라고, 아파트는 쌓아놓고 살기가 불편하다고.”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너는 내 살림 내가 알지, 오래 되었다고 버리고, 쓰다보면 아쉬울 때가 있어.” 하시면서 서운해 하신다.
“이것은 너 고등학교 들어가서 아껴서 산 것, 저것은 너 결혼할 때 줄려고 산 미제 커피 잔 냄비세트, 네가 싫다고 놓고 간 것.” 하시면서 추억을 되살리며 없는 살림에 하나하나 장만해가며 기쁨이 되고 추억이 된 물건들이다.
당신의 살아온 삶을 평가받는 양 촉각이 세워져 있는 엄마는 지금도 분내 나는 여인네구나. 아, 엄마도 여자구나. 손때 묻은 살림 하나하나가 엄마의 일생이고 그리움과 추억이구나. 우리의 잘난 시선과 안목이라고 정리한다는 것이 한 여자의 일생을 아니, 지난 시간들을 함부로 다루고 쉽게 결정해버린 부분들이 죄송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떨궈졌다.
나이가 들고 젊음을 위로한 채 살아가는 것이 추억을 먹고 그리움을 먹고 사는 것이구나. 늦게 오는 자식 따뜻하게 밥 먹이려고 이불 밑에 묻어둔 쇠 밥그릇, 미제 커피 잔 등 하나하나가 추억이고 그리움이고 염원인 걸. 머리에 이어진 돌 무게의 숫자대로 숟가락을 보고 남편을 느끼고 밥그릇을 보고 새끼를 품은 나의 엄마. 너무나 작아진 어깨지만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자식들의 버팀목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당신보다 커져버린 교자상의 무게만큼 그 고운 손을 세월이 가져가버렸구나.
나는 편안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뿐인데, 지난 세월의 가시 같던 상처도 힘들었던 부분도 추억과 그리움으로 감싸 안고 가는 것이 삶의 방식이었음을 깨닫고, 여전히 엄마는 자식들에게는 큰 산의 그림자임을 다시 한 번 피부로 느껴진다.
정리를 마치고 나서니 어둠이 길바닥에 낙엽과 뒹굴고, 우리도 어둑어둑해진 길을 따라 나 또한 그곳에 서 있는데, 엄마 마음도 모르고 함부로 정리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독백이 되풀이될수록 앞이 진하게 흐려진다.
엄마, 미안하고 정말 사랑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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