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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모 교수, 항일독립운동가 김화식(金華埴) 미스터리 마침내 풀어내
2021년 03월 23일 (화) 17:00:05 조광석 ksym0517@hanmail.net
   
▲ 김영모 교수
그동안 항일독립운동가 김화식은 그의 본적 및 주소(충남 보령), 그의 선계의 입향, 남포현 거주 윤석봉과의 교유 등만이 일부 알려져 있을 뿐 그의 재지에서의 활동이나 학연 등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더욱이 한국독립운동사 연구나 보훈처, 독립유공자공훈록, 의암학계에도 김화식에 대한 정보는 아주 영세하거나 출신지가 경북봉화라는 등의 커다란 오류를 범해왔다.

-독립유공자공훈록, 보훈처의 김화식 관련 기록, 의암학계의 오류 바로 잡아야

김영모 교수는 『충청문화연구』 25집(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2021.2.)의 『항일독립운동가 복암(復菴) 김화식(金華埴) 재조명』이란 논문에서 김화식 선계의 보령현 입향 및 청소 이거(移居), 그의 생애, 항일독립운동, 그의 이명 김우동(金友東) 등 그와 관련되어온 모든 의혹을 마침내 풀어냈다.

김영모 교수에 따르면 김화식은 안동김씨(구안동)로 선계가 경기도 파주에 대대로 세거해왔으나 김화식의 4대 종조 김낙원이 청라동의 재지사족인 한양조씨와 결혼하여 보령현에 입향한 이래 김화식의 증조 김재인이 한양조씨와 아들 김진국이 능성구씨와 각각 결혼함으로써 처변(妻邊)으로 청라동에 입향했다.

이후 김화식의 부친 김한표 대에서 숙부 김한기와 조카 김창식이 수안이씨와 각각 결혼함으로써 청라동에서 청소면 진죽리로 처변으로 이거하였다.

-김화식 선계의 경기도 파주에서 보령현으로 입향과 청소 이거는 처변(妻邊)으로 이루어져
-청소면 거주 김화식이 충북 제천의 유인석 의병진에 참여한 것은 족숙 김한순이 화서 이항로를 잇는 화서학파였기에 가능

김영모 교수는 청소에 거주하던 김화식이 충북제천의 유인석의 의병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 화서학파의 학연으로 이루어졌음도 풀어냈다.

김화식은 6세에 부친을 여의고 조부 김진국 밑에서 가학으로 공부하다가 족숙 김한순을 찾아 배웠다.

족숙 김한순은 유중교의 문인이었고 김한순의 부친 김우현은 화서 이항로의 문인이었기에 김화식이 유인석의 참모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김화식은 이런 학연으로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청소를 떠나 유인석이 주도하는 제천 의병진에 참여했던 것이다.

김영모 교수는 김화식이 스승 유인석과 중국을 3차례나 다녀오고 유인석 의병진의 진중일기를 모은 <소의신편>을 간행하는 등의 항일독립운동 행적을 그의 문집 『단몽협흡』(?蒙協洽)의 분석을 통하여 밝혀냈다.

또한 김영모 교수는 김화식이 남포현 거주 윤석봉과 연락하며 보령지방의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섰다는 새로운 사실을 재지의 인물들과의 교유관계를 통하여 찾아냈다.

이처럼 그가 윤석봉과 교유하며 남당학맥의 보령현 재지사족인 유호근 등과 교유할 수 있었던 것은 보령현 재지사족이 혼연으로 결합된 하나의 공동체였고 항일독립의 뜻을 함께했기 때문이었다.

-화서학맥 김화식의 남당학맥 보령현 재지사족과의 교유는 학연을 뛰어넘은 항일독립운동 의지의 표현
-호적명 김우동(金友東)은 청소면 진죽리 677번지 거주 항일독립운동가 김화식의 이명(異名)

국가보훈처는 1995년 김화식의 이러한 항일독립운동을 기려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김화식의 후손을 찾지 못한 채 훈장이 추서되었다가 지난 해 광복절에 후손들에게 훈장증이 전달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김영모 교수는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상황의 원인을 족보와 등본의 비교를 통하여 밝혀냈다.

1914년 일본에 의해 호적법이 시행되자 김화식은 부친 김진국은 그의 관직명인 ‘김선전’으로 본인은 ‘김우동’으로 세 아들 또한 가명이나 족보의 ‘자(字)로 등록했던 것이다.

호적명 ‘김우동(金友東)’은 ‘청소면 진죽리 677번지’ 거주 항일독립운동가 ‘김화식의 이명(異名)이었다.

김영모 교수는 인터뷰에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있던 김화식 선생의 행적을 밝히게 되어 기쁘다”면서 “본 연구를 계기로 청소면의 항일독립운동가 김화식 선생이 반드시 재평가되어 그의 숭고한 정신을 선양하고 추모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한편‘충청문화연구’는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가 충청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관한 학술연구논문을 학계전문가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매년 2월과 8월에 발간하는 전문학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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