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 승 용 숙명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

지역발전에 있어서 가장 큰 화두가 기업유치이다. 지방도시에 기업을 유치하면 세수와 인구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보령도 관창공단 등 부지를 확보하여 몇 개 기업이 이미 입주했지만 현실적으로 시민들의 기대에는 못 미치고 있다.

혹자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정치인이 나타나면 기업체를 쉽게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 관주도의 경제개발 시대 또는 정치와 경제계의 부패한 연결고리가 고착되어 있을 때에는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는 엄연하게 변했다.

 정치계와 정부의 역할은 공정한 기업 활동을 위해 제도를 마련하고 기업체가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는 것이다. 기업 경영자들의 합리적인 판단을 방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요즈음 경영인들은 기업의 성장과 경쟁력을 전적으로 직원들의 창조성에 의존하고 있다.

 80년대 이전까지는 물질적 투자와 육체적 노동력이 기업 성장과 지역발전에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90년대에 이르러서는 근면한 생활태도와 공동체 의식과 같은 정신적 측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0년에 들어와 구글이나 애플과 같은 기업이 제조업 분야를 제치고 엄청난 수익을 창출하면서 ‘창조성’이라는 새로운 자본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게 되었다.

 ‘창조성’(創造性 creativeness)이란 쉽게 말해서 ‘어떤 순간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떠올려 엄청난 성과를 획득하는 것’이다. 기업의 성장과 발전은 창조성에 기반을 둔 혁신을 통해 가능하게 되었다.
정치지도자의 역할은 기업인들의 창조 경영을 존중하고 지원해주는 것이다. 경영인들은 직원들이 창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창조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여건을 만드는 데 부심하고 있다.

 ‘창조성’은 마음이 편하고 행복해질 때 발현된다고 한다. 가족의 건강과 자식들 교육에 신경 쓰지 않아야 하고 틈틈이 여가를 즐길 수 있을 때 창조적 잠재성이 현실적인 성과로 나타난다고 한다.

음악을 듣고 공연을 즐기며, 인문학을 탐독할 때 창조적 인간의 본성이 노출된다고 한다. 일상적 생활이 즐겁고 불편함이 없을 때 창조적 작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기업을 유치하여 지역경제를 살리고, 그 결과로 시민의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는 생각의 순서를 반대로 바꾸어야 한다.

우선 시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기업체가 찾아드는 것이다.

주거 환경, 교육, 복지, 레저, 문화 등을 체계적으로 정비하면, 경영주는 직원들의 창조성을 일구는 지역으로 인식할 것이고 공장을 지을 것이다.

직원들이 보령에서 안심하고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고 미래 진로를 준비할 수 있다면, 멀리 가지 않고도 주말에 가족과 함께 유적지를 둘러보고 산책로를 거닐면서 마음의 휴식을 얻을 때, 직원들은 일에 몰입하고 창조적으로 성과를 올리게 될 것이다.

사통팔달의 교통망은 기업의 물류비용 절감에 중요한 물질적 기반이다.

그러나 질 높은 삶의 여건과 문화 콘텐트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거꾸로 그 사통팔달 교통망을 통해 인구와 상권을 빼앗기게 된다. 내포신도시, 세종시, 군산 새만금 등은 주변에서 무섭게 성장하는 지방 도시로서 서로 좋은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지만 결국은 무한 경쟁을 해야 할 것이다.

지역발전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주민이 먼저 행복해야 기업체가 이전하고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문화적, 정신적 기반을 마련하지 않고 하드웨어 시설만을 확충하는 경우 지역발전에 아무 의미가 없다. 90년대 미국이 세계적 리더로서 군림하기 위해서는 군사력과 경제력만 가지고는 불가능하고, 문화와 예술 중심의 소프트파워(soft power)가 중요하다는 조셉나이 교수의 지적이 국내의 지역발전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