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호사 최 진 복

질-

‘갑’은 1945년생으로, 1975년경 우측 고관절 부위에 결핵성 관절염을 앓아 골반과 대퇴골의 유합수술을 받았는데, 골반과 대퇴골의 유합된 부위에서 통증 등이 있자 우측 고관절을 인공고관절로 바꾸는 수술을 받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은 ‘여호와 증인’ 신도로 다른 사람의 피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교리를 생명보다 소중히 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사람의 혈액을 수혈받는 타가수혈을 받지 않는 방식인 무수혈 방식으로 시술되는 수술을 받고자, 2007. 12. 초순경 ‘을’ 대학교병원에 와서 위 병원 소속 정형외과 의사인 ‘병’에게 문의하였는데, ‘병’은 전반적인 검사와 혈액종양내과의 답변을 확인한 후 ‘갑’에 대하여 무수혈 방식에 의해 수술이 가능하다고 판단하였고

 ‘갑’에게 무수혈 방식의 수술이 가능하지만 수술 상황에 따라서는 수혈을 하지 아니하면 출혈로 인하여 사망에 이를 위험성이 있음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갑’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수혈을 하지 말 것을 ‘병’에게 요구하였고, 2007. 12. 17. 위 병원에, “치료에 있어 전혈수혈이나 성분수혈을 전적으로 금해 주실 것을 본 각서를 통해 알려드립니다.

 담당 의료진은 치료 도중 전혈이나 혈액성분의 수혈이 필요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수혈을 원치 않는다는 본인의 의지는 확고하며, 설사 환자가 무의식이 되더라도 이 방침은 변하지 않습니다.

본인은 여호와의 증인 신분으로, 관련된 문제를 심사숙고한 후 본 의료적/종교적 각서를 작성합니다. 본인의 이러한 방침을 따름으로 인하여 야기되는 모든 피해에 대하여 본인은 병(의)원 및 담당 의료진에게 민·형사상의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겠습니다

”라고 기재된 책임면제각서를 제출함으로써, 타가수혈을 거부하겠다는 명확한 의사를 표시하였습니다. ‘을’ 대학교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의사인 ‘정’은 수술 전날인 2007. 12. 19. ‘갑’과 ‘갑’의 딸을 만나 수술 도중 대량출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그러한 경우 타가수혈을 하지 않으면 장기손상 및 부전에 의한 사망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설명을 하였고, 2007. 12. 20. 수술 시작 직전에 다시 ‘갑’에게 타가수혈을 거부하는 의사가 유효한지 확인하였으나, ‘갑’은 여전히 타가수혈을 강력하게 거부하였습니다.

‘병’은 ‘갑’의 요구에 따라 무수혈 방식으로 수술하던 도중 과다출혈로 인하여 범발성 응고장애가 발생하여 지혈이 되지 않고 타가수혈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자, 정형외과 전문의로 하여금 수술실 밖으로 나가 ‘갑’의 가족들에게 ‘갑’의 상태를 설명한 후 타가수혈을 할 것인지 여부를 묻도록 하였는데, ‘갑’의 남편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였으므로 타가수혈을 거부한 반면 ‘갑’의 자녀들은 타가수혈을 강력히 원하는 등 가족들 사이에 의견이 나뉘어 확실한 대답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는 중 ‘갑’의 출혈이 계속되어 ‘병’은 수술을 중단한 후 ‘갑’을 중환자실로 옮겼으나, 당시는 폐울혈 및 범발성 응고장애가 발생하고 있는 상태라 타가수혈이 증상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어 병원 측에서는 ‘갑’에게 타가수혈을 시행하지 아니하였고, ‘갑’은 결국 다량 실혈로 인한 폐부종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이때, ‘병’은 수술도중 수혈을 하지 않아, ‘갑’을 사망케 한 사안과 관련하여, 업무상과실치사의 형사책임을 질까요.

답-

결론적으로, ‘병’은 ‘갑’의 사망과 관련하여, 업무상 과실치사죄의 형사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1) 환자의 명시적인 수혈 거부 의사가 존재하여 수혈하지 아니함을 전제로 환자의 승낙(동의)을 받아 수술하였는데 수술 과정에서 수혈을 하지 않으면 생명에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응급상태에 이른 경우에, 환자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불가피한 수혈 방법의 선택을 고려함이 원칙이라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환자의 생명 보호에 못지않게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야 할 의무가 대등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평가되는 때에는 이를 고려하여 진료행위를 하여야 합니다

 (2) 어느 경우에 수혈을 거부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생명과 대등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될 것인지는 환자의 나이, 지적 능력, 가족관계, 수혈 거부라는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게 된 배경과 경위 및 목적, 수혈 거부 의사가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되어 온 확고한 종교적 또는 양심적 신념에 기초한 것인지, 환자가 수혈을 거부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자살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지 및 수혈을 거부하는 것이

다른 제3자의 이익을 침해할 여지는 없는 것인지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합니다. 다만 환자의 생명과 자기결정권을 비교형량하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의사가 자신의 직업적 양심에 따라 환자의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가치 중 어느 하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행위하였다면, 이러한 행위는 처벌할 수 없습니다.

(3) 그렇지만 이러한 판단을 위해서는 환자가 치료행위 과정에서의 수혈의 필요성 내지 수혈을 하지 아니할 경우에 야기될 수 있는 생명 등에 대한 위험성, 수혈을 대체할 수 있는 의료 방법의 효용성 및 한계 등에 관하여 의사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듣고, 이러한 의사의 설명을 이해한 후 진지한 의사결정을 하여야 하고, 

그 설명 및 자기결정권 행사 과정에서 예상한 범위 내의 상황이 발생되어야 하며, 또한 의사는 실제로 발생된 상황 아래에서 환자가 수혈 거부를 철회할 의사가 없는지 재확인하여야 합니다.

(4) 위 사례에서, ‘병’의 무수혈 방식의 수술 및 그 위험성에 관한 수술 전의 설명 내용, ‘갑’의 나이, 가족관계, ‘갑’이 이 사건 수술에 이르게 된 경위, ‘갑’이 타가수혈 거부라는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게 된 배경, 수혈 거부에 대한 ‘갑’의 확고한 종교적 신념, 책임면제각서를 통한 ‘갑’의 진지한 의사결정, 수술 도중 타가수혈이 필요한 상황에서의 가족 등의 의사 재확인 등에 관한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면, 이 사례에서는 ‘갑’의 생명과 자기결정권을 비교형량하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이 있으므로, 타가수혈하지 아니한 사정만을 가지고 ‘병’이 의사로서 진료상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아니하였다고 할 수 없습니다(대법원 2014.06.26. 선고 2009도14407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