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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똥의 비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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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문학보령예지회-서태숙 |
따스한 햇살이 눈부신 오후, 한 내천 공터에는 사람들이 산책을 나왔습니다. 분홍빛의 스키니 진을 산뜻하게 입은 언니는 하얀 강아지 목줄을 늘어뜨리고 한가롭게 걷고 있습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심각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걸어가는 아저씨도 보입니다. 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챙이 넓은 모자까지 쓴 아줌마들은 하나 둘, 하나 둘 팔을 휘저으며 갑니다.
사람들 발길에 닳아진 듯 길바닥 한 쪽에 부쩍 자란 냉이가 봄이 왔음을 알려줍니다. 냇물 속에 늘어진 갯버들은 여린 가지에 연둣빛 솜털을 두르고 있습니다. 곧추 선 밤색 꺼풀은 마치 괭이발톱처럼 보입니다. 아직 바람이 차지만 그래도 바람 속에는 봄 냄새가 풍겨옵니다. 어느새 시은이가 사는 마을에도 봄이 성큼 다가왔나 봅니다.
올해 다섯 살인 시은이는 양보와 배려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작년에 동생이 태어난 후로 사랑을 뺏겼다는 생각이 드나봅니다. 가끔은 아기처럼 옹알이를 하고 동생과 똑같이 누워서 젖병을 빨아 댑니다. 이제 키가 커서 더 이상 탈 수 없는 보행기에 다리를 구부려 넣고 거실을 휘젓고 다니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는 할머니 집에서 자고 가겠다고 졸라서 할머니는 측은한 마음에 허락을 했습니다. 다음날, 엄마가 데리러 오자 시은이는 제 할머니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서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부드러운 말투로 시은이를 달래고 안아주려고 하자, 갑자기 큰 소리로 울어댑니다. 엄마가 말하기를 “내가 자기를 미워 한다내요.” 라고 합니다. 시은이 엄마는 할머니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말을 하며 일어섭니다.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이를 두고 엄마는 할 수 없이 동생만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할머니가 시은이를 안고 “아까 왜 울었니? 엄마를 하루 안보니까 보고 싶어서 울었어?” 라고 물으니 “아니 서러워서 울었어.” 라고 대답합니다. 할머니가 시은이를 보며 다시 말합니다. “할머니는 동생보다 시은이가 더 예쁜데...” 그러자 시은이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럼 할머니가 나를 키워줄래?”
할머니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시은이의 아픈 마음을 어떻게 어루만져 줘야 할지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엄마와 아빠, 친가, 외가 식구들의 관심과 사랑을 동생에게 빼앗긴 것 같아서 마음이 외롭고 슬펐던 것입니다. 그 후로 할머니는 한 주에 한 번씩 시은이가 올 때마다 홀·짝수 놀이, 공놀이, 자전거 타기, 학교 등나무에 달린 커다란 콩 따기, 또 음악 틀어놓고 춤추기 등 함께하며 시은이가 웃음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런 할머니의 노력이 통했는지 시은이는 다시 활기찬 모습으로 깔깔거리며 놉니다.
시은이가 좋아하는 것들은 화초에 분무기로 물주기, 강가에 나가 새들 바라보는 것입니다. 지난 여름에 할머니는 시은이를 위해 사마귀 한 쌍을 풀숲에서 가져다주었습니다. 집으로 가져가겠다고 하니 할머니는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담아 주었지요. 어미사마귀는 아무리 기어오르려고 발버둥 쳐도 뚜껑이 닫혀있어 툭 떨어집니다. 통을 들여다본 엄마가 “시은아, 저 어미 사마귀 뱃속에 아기 사마귀를 품고 있어. 곧 알을 낳아야 되는데 놓아주지 않으면 죽어. 그러니 엄마랑 풀숲에 놓아 보내자.” 하고 시은이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입에서는 뽀글뽀글 거품을 품어내며 노랑 속치마를 드러낸 채, 가만히 있는 어미 사마귀를 시은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바라보더니 “엄마, 사마귀 불쌍하니까 놓아줘.” 라고 말했습니다. 시은이는 통을 들고 엄마랑 놀이터 수풀더미에 놓아주었습니다. 아마 어미 사마귀는 새끼들을 잘 키워가겠지요.
아빠가 쉬는 날에 모처럼 시은이네 가족이 김제에 콩쥐 딸기 농원을 하시는 이모할머니네로 놀러갔습니다. 유아기 때는 교육적인 효과를 거두기에 현장학습만한 게 없으니까요. 이모할머니는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딸기 다발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시은이는 통통 뛰어 다니며 딸기를 많이 먹었는지 “엄마, 나 쉬 마려.”하고 엄마를 찾습니다. “그래, 나가서 누자.” 엄마는 시은이를 데리고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쉬를 누던 시은이는 “엄마, 똥이 나와 어떡해. 다른 사람들이 알면 부끄러우니까 이거 강아지 똥이라고 말해줘.” 그렇게 말하는 시은이를 보며 엄마는 자꾸만 웃음이 나왔습니다.
“엄마, 자꾸만 웃으면 사람들이 나를 범인인줄 알잖아.” 시은이와 엄마와의 비밀을 모르던 아빠가 그 사실을 할머니들한테 말하자, 시은이가 갑자기 큰소리로 울음을 터뜨립니다. 아직은 어리지만 창피해서 울었던 것입니다. 옛 말에 ‘아기는 아프고 나면 큰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은이는 몸과 마음이 아프고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덕분에 기쁨과 서운함도 알게 되었습니다. 동생을 보며 퇴행현상도 자연스레 겪으며 서서히 나눔과 양보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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