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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행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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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문학 보령예지회 김정자 |
유년시절 시골 할머니 댁이나 외갓집에 가면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서부터 탱자, 살구, 앵두, 오디, 자두, 감, 등의 나무에 계절 따라 매달린 과실들이 지천이었다. 이제는 시골에도 여간 귀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햇살 좋은 초 여름날 작업실에서 목곡이 슬슬 콧바람을 넣었다. “날씨도 좋은데, 바람도 쏘일 겸 오디나 따러 가볼텨?” 하였다. 나는 화색을 하며 “워디~ 오디가 있대요?”
걱정스런 마음으로 다시 또 물었다. “ 아무나 따 가져와도 되나요?”
자꾸 질문하니 미소 띤 얼굴로 “따라만 와봐유!”하곤 밖으로 나갔다. 곁에 함께 있던 서각회 동료들도 반색하며 “어!~ 그럼 나도 데리고 가요.” 더 좋아하면서 따라나섰다.
초여름 오후 따가운 햇살을 피하기 위해 여인들은 완전무장을 했다. 밀짚모자와 긴팔셔츠도 입고 장갑과 마스크도 준비했다.
오늘 세 여인의 안내를 맡은 목곡은 인솔대장이 되였다. 일행은 대장을 따라 초록으로 우거진 풀숲을 헤치고 시외 한적한 야산을 찾았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오디나무가 자그마한 키에 가지가 흐드러지게 늘어져 줄지어 서 있었다. 가지에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높이다. “어머나! 오디 따기에 딱 좋은 나무네요.” 황홀할 만큼 미소가 흘렀다. 까만 꽃송이가 푸른 잎에 숨어 다닥다닥 매달려 숨바꼭질을 한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서서 올려다보니 부지런한 하루살이 비슷한 벌레들이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사람 발길이 없던 탓인지 오디는 하루살이의 식량이 되어 대부분 수분이 말라 있었고,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 중 실한 것으로 따다 입에 넣어보니 어느 것은 맹탕이고 어느 것은 달콤한 맛이 났다. 대장이 “에이! 너무 늦게 왔네!” 안타까워하시며 “너무 아깝지만 내년을 기약하고 내려갑시다.” 하였다. 욕심스런 여인들은 자그마한 봉지에 조금이라도 더 채우려고 나무에서 버둥거렸다. 튼실한 것은 맛이 좋았다. 먼저 앞서 가던 대장이 소리쳤다. “어허! 더 좋은 곳으로 모실 테니 빨리 따라 오슈!”하는 것이다. 실하지는 않아도 아까운 마음에 자리를 쉽게 뜨질 못하고 욕심껏 한 줌 더 따가지고 내려왔다. 다시 차를 타고 또 다른 곳으로 짙푸른 들길을 따라 20분을 달려 들판 개울가에 도착하였다. 썰렁한 냇둑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오디나무가 안 보였다.
우리는 이리저리 둘러보며 “얼레!~ 오디가 어디 있슈?” 하면서 대장만 바라봤다. 당황한 대장은 둑 마다 살펴 찾아보더니 “이~런 오디나무를 모두 베어 놓았네! 어리여!~ 여기에서 작년에 한 가마를 땄는데 어쩐 일이랴!~” 개울 둑 언덕에 오디나무 베어서 쌓아놓은 나뭇단들이 삭쟁이 나무처럼 놓여 있었다. “어리여~”를 연발하시면서 혀를 차셨다. 그리곤 다시 몇 그루 안 되지만 바닷가 근처에 해풍을 맞고 자란 토종 오디나무가 있다며 안내했다. 작은 나무지만 따는 재미가 있을 만큼 싱싱한 오디가 매달려 있었다.
먼저 오디를 따기 시작한 송죽님이 소리쳤다. 오디 한줌 입에 털어 넣고 “ 야!~ 진짜 맛있다. 어서 와보세요.” 큰 소리로 불렀다. 날렵한 두 여인이 나뭇가지를 타고 앉아 오디나무 속에서 채취를 하고 있었다.
오디 한줌 따서 입에 넣으니 달콤한 맛에 자꾸자꾸 손이 갔다. 입술에는 어느 새 보랏빛으로 물들어 추위에 떠는 안쓰러운 모습으로 변했다. 오디를 한 알, 한 알 따면서 흘러간 옛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또 다시 대장이 외쳤다.“그만 허구 빨리 따라 와유!”하면서 대장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대장을 놓칠세라 부랴부랴 사라진 곳을 향하여 달려가 보니 예전에 바닷물이 드나들던 곳이 지금은 넓은 갯밭으로 되어있는 곳에서 함초라는 해초를 뜯고 있었다. 함초의 약 효능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뜯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아직 시기가 이른 탓에 여린 함초가 많았다. 그 중 제법 통통한 것으로 골라 봉지 가득 채웠다. 여기 저기 뾰족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니 앞으로 한 달 후에 다시 만나기로 무언의 약속을 건넸다. 대장의 탱크 같은 차는 또 다른 비밀의 장소로 일행을 안내했다. 물도 건너고 다시 산길로 들어서서 언덕의 잔디에 오르니 차가 멈추었다.
차는 낡았어도 힘이 좋은 5단 기어차라서 산길을 가기에는 최고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탱크다. 차에서 내려 반대편 대나무 숲으로 안내되어 내려갔다. 대숲에서 부는 바람은 뙤약볕에서 흘렀던 땀방울을 씻어가고 여름이란 계절도 잠시 잊었다.
평소에 보기 힘든 대형 죽순들을 바라보고 일행들은 모두 입을 열어 한마디씩 했다. “어머나! 대단해요. 이런 곳이 있었다니? 세상에나!~”를 연발하며 입가에 흐르는 미소는 다물어지지 않았다.
시원한 대밭에서 시간도 잃은 채 죽순만 다듬다보니 어느새 커다란 자루가 가득이다.
기쁨으로 가득한 일행은 돌아오는 차안에서 하루의 즐거움을 “하하하” 환한 웃음으로 대답했다. 대장 덕분에 일행은 예상을 초월한 멋진 체험을 하였고 가족이나 이웃에게 나누어줄 행복으로 기뻤다. 부지런히 손질하여 가족에게 아침엔 함초와 야쿠르트를 갈아서 드리고, 저녁엔 죽순회와 죽순볶음으로 식탁이 풍성했다. 간식으로 오디와 우유를 갈아서 드렸다.
이튿날, 80키로 가마니에 가득한 죽순을 다듬어 데쳐내어 커다란 대형 함지박에 담았다. 데쳐낸 죽순을 채를 썰어 갖은 양념을 넣고 새콤달콤하게 무쳐서 작업실에서 잔치를 열었다.
한 젓가락 들면서 모두가 합창을 했다. “죽순 고장, 담양 대통밥 집에서 먹은 죽순회보다 몇 배가 더 맛나네유!~” 인사말이라도 보람 있고 행복하였다. 수확하면서의 즐거움과 나눔의 여유로 소박한 행복을 전해주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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