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것은 스위치를 누름과 동시에 끊임없이 돌아가는 선풍기와 같아야 ‘성실하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때로는 쉬었다가 할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도 아이들은 학교에, 남편은 일을 가고 혼자 여유로운 시간을 갖자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일을 부추기다 보니 여유로운 시간을 갖지 못한 느낌이 마음에 남아 있었나 보다. 조금은 답답하고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있어도 선뜻 그럴 수 없는 것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이 아닐까. 우리 부모님께서는 과수원과 농사일을 하신다. 이제는 일흔이 넘은 연세에 많은 일을 하려니 일손도 부족하고 힘에 부처하신다. 올봄에 동생이 한 달 동안 부모님과 있으며 일손을 거들면서 '언니가 와서 밥만 해줘도 좋겠다.'라고 했다. 그 말이 뇌리에서 계속 맴돌았지만 내게 닥친 많은 일이 내 앞에 줄을 서고 있어서 발걸음을 쉬이 하기가 힘들었다. 그것들을 발등에 떨어진 불똥을 꺼뜨리는 심정으로 처리해 나가야했지만 무슨 일을 해결한다는 것이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일 하나가 다 끝마치길 가만히 기다렸다 일 하나 처리하고 또 기다렸다가 일을 처리해야 함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동생의 말도 못 들은 체 했지만 마음은 바늘방석 이었다. 어느 정도 급한 일을 해결하고 나서야 겨우 부모님 곁에 올수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날이 새면 논밭으로 산으로 가셔서 해가 뜨겁게 뜰 때쯤이면 돌아오신다. 벌써 반나절 일을 다 하시고 오셔서 아침 식사를 하신다. 또 해가 넘어갈 때쯤 일을 나가셔서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오시면 하루의 일과가 마침이 된다. 그 사이에 낮 뜨거울 때 외적으로 보아야 될 일들을 보시기도 하고 대인 관계도 성실히 이행하신다. 나에게 한 번의 교통사고가 있었다. 그것은 간간히 어깨 통증을 심화시킨다. 자동차가 고장 나면 돈을 주고 고치면 되지만 사람은 아닌가 보다. 비가 오려고 하거나 할 일을 해야 할 때면 어김없이 돌덩이를 얹어 놓은 듯 무겁게 어깨를 짓누른다. 그래서 못 견디게 아프면 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잠이 들고 슬며시 깨어나니 조용한 농촌 마을에 안방에서는 할아버지와 외손자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건넌방 부엌에서는 가족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며 나는 도마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대문 밖에서는 개 짖는 소리 동네 어귀에서는 트럭을 타고 무엇인가 사고팔라는 소리가 가물가물 들려온다. 어깨 눌림도 어느 정도 가신 것 같고 해가 질 무렵이면 고구마 밭을 메려 가도 될 만큼 거뜬할 정도의 컨디션도 되찾는다. 늦둥이 아들을 학교수업을 농촌 생활 체험 학습으로 대체하여 함께 갔다. 먼 훗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농사를 지으셨지만, 열심히 일하시는 조부님들의 부지런한 생활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근면함의 교훈을 느끼고 기억해 줬으면 한다. 요즘 농촌에는 모내기를 끝낸 후여서 푸른 들판을 바라보면 답답하고 복잡했던 마음이 확 트이고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며 일상에서 벗어났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모내기철이 되면 기분 좋았던 추억이 하나 되살아난다. 모내기철에 부모님의 바쁘신 일손을 거들어 드린다고 물이 가득 찬 논두렁을 잔심부름으로 오가면서 유독 나의 눈길을 끌어들인 것이 있었다. 연분홍 들꽃, 숲이 우거진 야산에서 논으로 길게 뻗은 나뭇가지에 연분홍 하늘하늘한 꽃이 피어 나의 가슴을 괜스레 설레게 하였다. 살아가면서 그때의 설렘이 아련하게 생각이 나면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그 꽃에 대해 알아보고 들은 사연이 있었다. 하늘에서 불의 화신이 죄를 지어 지상에 험상궂은 형상으로 태어나 거리의 비렁뱅이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여왕의 행차를 보고 여왕을 사모하게 되어 상사병으로 앓다가 세상을 먼저 떠나니 상여를 옮기려는데 상여가 땅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고 한다. 이런 사연을 여왕이 소문으로 듣고 안타까워하며 상여에 손 얹어 주니 그때야 땅 위에서의 인연을 놓고 떠났다 한다. 요즘 자동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연분홍 하늘하늘하게 핀 꽃을 많이 볼 수 있다. 꽃 이름이 자귀 꽃이라고 한다. 어쩌다 손닿을 정도의 거리에 핀 꽃을 보고 가까이 다가가면 금세 사그라지고 멀리서 바라보기에는 애가 닳고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해답을 찾지 못한 꽃이기도 하고 낮에는 활짝 폈던 푸른 잎들이 밤이면 하나로 포개어진다고 부부의 사랑을 담고 있다고도 한다. 모처럼 일주일의 시간을 어린 아들과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 곁에서 있으면서 고향의 평안함과 가족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부모님께서 서로 의지하며 바라보며 사시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이른 새벽부터 같이 일하시고 같이 식사를 하시고 같이 쉬고 같이 살림을 이루시고 매우 단순한 삶으로 보이지만 순박하게 사시는 모습에 큰 힘을 얻고 푸른 들판 뒤에 두고 나의 일상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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