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문학 보령예지회 김견남

명절이 즐거운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언제부턴가 없어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게 명절이다. 돌아오는 추석도 예외는 아니다.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추석이 이런저런 생각에 미리부터 마음이 쓰이고 피로감이 몰려온다.

시댁하고 불편한 관계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단한 명절 상차림을 하는 것도 아니다.
예상치 않은 손님이 들이닥치는 일도 없이 대체로 조용한 명절을 보내는 데도 부담감은 반복된다.
명절 전날 동서랑 같이 만든 전이며 나물무침 밑반찬들을 싸가지고 가서 하룻밤을 보내고 차례를 지낸 후 성묘를 다녀오고 점심이 되기 전에 친정집을 향한다.

사실 미리부터 마음 썼던 일 들은 너무 간단히 끝난다.
친정 부모님께서 건강하실 때만 해도 명절은 늘 이렇게 한가롭게 반복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거동을 못하시는 친정엄마와 거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나 끼니를 해결 하실 수 없는 친정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셨다.

평소에도 죄스러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명절 때는 너무나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자식이 여럿이면 뭐하나. 가까이서 시중들어줄 자식은커녕 가끔 들여다 봐주는 자식조차 없으니....
긴병에 효자 없다고 했던가.
엄마가 처음 병원을 드나들 때는 병원이란 소리만 들어도 귀가 쫑긋 가슴이 쿵당~이었다. 엄마가 오랜 병치레 끝에 요양병원에 입원하시고 아버지도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같은 병원에 입원하시면서 어느 정도 안도의 숨을 쉬었다.
아버지는 아닌데 나만.....
점점 나는 엄마가 울고 계시다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아도 밥을 잘 못 드신다는 소리를 들어도 ‘어떻한데요 아버지...’ 라는 무성의한 대답만 한다.

 병원에 계시니 의사 간호사 요양보호사가 어련히 알아서 돌봐 주시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일 게다.
전화가 끊기고 얼마간 엄마 생각을 하지만 그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다시 잊고 산다.
추석이 다가온다. 아버지 목소리가 점점 더 황량해 진다.
그냥 벨소리만 울리고 끊어지는 일들이 반복된다.

새벽 5시에 찍힌 부재중 전화도 아버지. 잠시 전화기를 방치한 사이에 찍힌 부재중 전화도 아버지다.
하루에 많게는 열통 적게는 서너통. 벨소리는 길지도 않게 한 두 번 울리고 바로 끊긴다.
뭔 일이신가 싶어 전화 드리면 전화 걸었던 일이 없으시단다.

잘못 눌려서 걸어지셨나보다 생각하기에는 그 횟수가 너무 잦고 가까이 사는 둘째 언니에게도 계속되는걸 보면 분명 잘못 눌려진 것도 아닌 것 같다.
지난 명절에는 둘째언니 시아버지께서 같은 요양병원에 계서서 두 분이 언니 집에서 명절을 보내셨지만 올해는 언니의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우리아버지만 남으셨다.
사돈어른과 동무삼아 함께 가셨던 둘째언니 집에 올해는 사돈어른 차례를 지내느라 사돈식구들 다 모일게다. 언니는 괜찮다고 올해도 언니 집으로 모시려고 하지만 아버지는 극구 사양 하셨단다.
‘내가 사돈어른도 없는디 자식들이 산 나를 보고 돌아간 지부모 생각나게 머더러 가겄니 나는 그냥 여기서 주는 밥 먹고 엄마랑 같이 있을란다.’
나이 드신 지금도 남을 의식하고 체면치례를 잘 하시는 아버지시다.
명절이라고 다들 자식들이 모시러 오느라 병원이 들썩들썩하는데 그곳에 남아 있어야 하는 당신의 처지가 견디기 어려우시련만, 단호한 결정이시다.
우연인지 우리 집 딸 여섯 중에 나를 포함한 다섯의 남편이 모두 장남이고, 큰언니만 차남이다. 달랑 늦둥이 아들하나는 아직 미혼이다.
내가 다시 전화를 건다.
‘그럼 추석날 오후에 모시러 갈께요. 그때 나오셨다가 들어가세요 아버지.’
‘그래라 그럼 그게 좋겄다.’하신다.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으시다.
전화기에서 혼잣말인 듯 나직하게 아버지 목소리가 들린다.
‘쉽게 죽지도 않게 생겼어 나도 니 엄마도....’
오형제의 장남으로 북적대던 아버지의 큰~명절도 당당했던 아버지 큰 목소리도 누워계신 엄마의 무음처럼 낮고 쓸쓸하다.
어디로 가야하나~어디로 가나~ 인생고개 넘어 넘어 어디로 가나~~
밤은 깊고 설움 짙어 달빛도 무거운데~~
마른가지하나 쓸쓸히 뒹군다. 명절을 맞이하는 딸의 마음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