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령예지회 김 견 남

토요일 오후 남편과 함께 시골집에 갔다.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어디선가 전화벨이 울려 받았더니 다짜고짜 지금 하우스로 와서 파 씨를 받으라고 하고 끊는다. 남편과 나는 영문도 모르는 채 하우스로 갔다. 미리 알고 가셨는지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께서도 계셨다.
하우스 안에 들어서는데 쇠파이프에 흰색 운동화 세 짝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언 듯 보아도 신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건 분명한데 두 짝은 한쪽에 또 다른 한 짝은 좀 더 떨어진 곳에 매달려 있었다.

운동화를 왜 묶어 놓았지? 구멍은 안 났어도 신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혹시 비가 오면 갈아 신으려고 묶어 놓았나? 버리기 아까워서 그냥 묶어 놓았나? 오만 상상을 다 해봐도 알 수 없었지만 파 씨가 도착하는 바람에 하우스 밖으로 나갔다.

거기에 파 씨를 가득 실은 트럭이 와 있었다.

남편과 나와 시부모님은 함께 파 씨 자루를 비가 안 맞게 하우스 안으로 날라야 했다.

난 남편이 파 씨 자루를 트럭에서 내려 밀차에 잘 올려놓을 수 있도록 트럭 가까이에 밀차를 대놓고 손잡이를 단단히 잡고 서 있다가 파 씨 자루가 실리면 내가 끌고 남편은 뒤에서 밀었다. 변덕맞은 나는 힘들다며 신랑이 끌고 내가 밀고, 내가 끌고 신랑이 밀고를 반복했다,

큰 정부미 부대로 백자로가 넘어 보였다. 안 해본 일을 하려니 너무 힘들고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잠깐 인사나 하려고 지나다 들렀는데 제대로 걸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가 시댁에 오지 않았다면 이 많은 파 씨를 시부모님께서 다 하셨을 생각을 하니 그래도 우리가 하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이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하우스 바닥이 고르지 않은 데다 밀차 운전도 서툴러서 엎어 먹고 뒤집어 먹고 넘어지고를 거듭한 끝에 파 씨 나르기가 끝이 났다.

그러면 끝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파 씨를 말려야 한다면서 하우스 안 바닥에 검은 포장을 깔자고 했다.

그 위에 큰 파 씨 자루를 중간중간 가져다 놓고 다시 가져다 놓은 파 씨 자루를 풀러 골고루 바닥에 펴 놓는 작업이다.

쉬운 것 같은 일이었지만 묶은 파 자루를 풀어서 바닥에 눕히고 그 파 씨를 꺼내서 다시 바닥에 깔고 하는 사이 내 팔다리는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비몽사몽 파 씨를 다 널고 비 오듯 떨어지는 땀방울을 닦아내며 빨리 집에 가서 씻을 생각을 하는데 이번에는 또 하우스 비닐을 묶어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아~ 울고 싶다. 그러나 그럴 새도 없다.

 하우스 밖으로 나가신 시아버님과 남편이 동시에 나에게 ‘운동화 가져와~’를 외쳤기 때문이다. 순간 먼 운동화를? 하면서 내 신발을 봤다.

난 운동화를 신지도 않았고, 일하다 말고 웬 운동화 타령인가 하며 멍 때리고 서 있는데 “거기 하우스 안에 매달린 운동화 있잖여~”한다.

 아~ 그 운동화? 나는 빠른 동작으로 그 운동화를 가져가서 남편에게 물었다.
“신게도 안 생긴 운동화는 왜?” “응. 다 쓸데가 있어” 남편은 받은 운동화를 끈에 꽁꽁 묶더니 나에게 하우스 건너편으로 가라고 한다. 영문도 모르는 나는 건너편으로 간다,

이번에는 “자~아~ 잘 받아~~”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휘이익~~~운동화 한 짝이 순식간에 건너편에서 널러 온다.

나는 운동화에 맞지 않으려고 후다닥~ 피하면서 놀라운 순발력으로 하우스 비닐이 운동화에 맞아 찢어지지 않도록 잘 거들며 받는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그 운동화에 묶여있는 끈을 풀어서 하우스 맨 아래 있는 말뚝에 묶으라고 한다. 신기하게도 운동화가 떨어진 자리쯤에 또 쇠말뚝이 박혀 있다.

‘아하~ 운동화가 이렇게 쓰이는 구나. 긴 끈을 높은 하우스 위로 넘기려니 인력으로는 어렵고, 돌을 묶어 던지려니 자칫 잘못하면 하우스비닐이 찢어지거나 사람이 맞으면 다칠 수가 있겠지만, 커다란 운동화는 약간 둔해서 날라 오는 속도를 감지할 수도 있고 피할 수도 있으니 딱 좋은 선택이었다.

그날 나와 남편은 운동화 던지기를 한동안 한 뒤 일을 마쳤다. 시부모님은 연신 고생했다고 니들 아니었으면 다 하지도 못했을 거라고 지금은 몰라도 내일 이믄 몸 뎅이 아플 텐디 컬 났다고 하시며 우리 걱정까지 하셨다.
집에 돌아오면서 남편에게 “농사일도 안 해 봤는데 운동화 던지기를 어떻게 알았어?” 하고 물었더니 남편은 쳐다보며 살짝 웃으며 그 정도는 안다고 한다.

잘난체 한다며 나도 따라 웃는다. 서로의 웃음 속에 ‘오늘 수고했고 참 예뻐’ 라는 말이 들어있다.
지금도 더럽고 낡은 흰색 운동화를 보면 하우스 안의 운동화가 생각나고 그 날의 운동화 던지기가 생각난다. 기계화 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 대안으로 기지를 발휘한 운동화 던지기는 오랜 농사일로 한 평생을 살아오신 어른들의 노하우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