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할 때 깜빡하고 돋보기를 사무실에 놓고 왔다. 얼마 전부터 돋보기가 없으면 책 읽기나 신문읽기가 어려워졌다. 돋보기 쓰지 않을 때 책 많이 읽으라던 선배의 말이 실감 나는 날이다. 집에 와서 돋보기도 없는 저녁 시간 뭘 해야 할까 두리번거리다가 태블릿이 눈에 들어온다. 충전하고 <동경가족> 일본영화를 선택했다.아주 잔잔한 일본 특유의 영화다. 템포가 느리고 여백이 많은 느낌의 영화.가족이면서 예를 중시여기다 보니 따스함은 바닥으로 가라앉은 느낌이다. 친구의 조문을 위해 동경으로 올라오신 부모님을 마중을 나가야 하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막내에게 떠넘긴다. 막내가 약속장소를 잘못 알게 되어 기다리던 부모님은 택시를 타고 큰아들네로 오게 된다. 동경에 오신 부모님을 착한 콤플렉스로 포장된 큰아들은 잠시 모시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들의 생활이 우선이다. 의사인 큰아들은 바빠서 동경 시내 구경을 같이 할 수 없고 딸 역시 미용 세미나로 바쁘다는 이유로 동경 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근사한 호텔 방을 잡아 드린다. 창밖으로 보이는 놀이공원의 야경은 아름답게 느껴지기보다 공허함으로 밀려들고 좋은 침대에 누웠지만 낯설고 생경스러워 잠을 설친다. 고향의 작은 마을에서는 큰아들과 딸이 성공해서 동경에 살고 있어 착한 콤플렉스에 포장되어 부모의 허울을 포장해 주고 있었지만, 부모는 쓸쓸하게 하룻밤을 보내고 딸네 집으로 돌아온다. 큰아들과 딸은 집에 와 있는 부모님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아버지는 옛 친구의 조문을 가고 어머니는 막내가 어찌 사는지 걱정되고 따뜻한 식사라도 차려 주려고 막내아들을 찾아간다.아버지와 막내아들은 남보다 못한 관계였다. 큰아들은 반듯하고 공부도 잘하고 의사가 되어 자랑스러웠지만, 막내아들은 아버지 기준에 맞지 않는 못난 아들이었기에 아들 가슴에 상처를 많이 주었다. 막내아들은 무대 세트 설치하는 일을 재밌게 하고 있지만, 그 나이 되도록 앞가림을? 못 하는 것 같아 어머니는 안쓰럽기만 하다.막내아들 집에서 처음 만난 여친에게서 따뜻함을 느끼며 며느리로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큰 아들네 와서 쓰러진 어머니는 심장질환으로 돌아가신다.고향으로 돌아와 장례를 치르고 어머니 유품에만 신경 쓰던 딸과 큰아들은 바로 동경으로 돌아간다. 막내아들과 그의 여친만이 며칠 더 머물면서 아버지를 챙겨드린다. 혼자 남아 계실 아버지를 위해 지붕을 고치고 집안을 돌봐준다. 떠나려는 막내 여친에게 아버지는 무릎 꿇고 솔직한 감정 교류를 전달하며 정중히 인사를 한다. 결혼을 허락하며 어머니가 간직해온 30년도 더 된 시계를 건네준다. 이 영화에서 시부모관계와 장서관계도 진솔하게 보여 준다. 속마음을 살짝 감추고 예의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서로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 속에 딱 거기까지라면 관계가 복잡하게 얽힘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이 마음이 계속 공허한 느낌은 뭘까? 나 역시 착하게 살았다 하지만 착한 콤플렉스 틀에서 허우적거리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진정 착하고 선한 마음을 갖고 관계를 유지하기가 정말 어려운 걸까? 좋은 소리 듣고 인정받기 위해 욕구를 포기하고,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했을 때 혹시 불편해 질까 봐 참고 살았던 것들이 습성화되어 버린 것 같다. 그렇게 살아온 것이 때로는 힘들고 불편한 마음이라면 착한 콤플렉스에서 깨어 나와야 할 것 같다. 포장하지 않은 진정으로 맘이 가는 데로 선하게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돋보기가 없었던 저녁에 잔잔하게 심적 파동을 느끼게 하는 영화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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