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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추억
2017년 06월 01일 (목) 10:27:54 편집부 9319951@hanmail.net
   
▲ 보령예지회 최은순
가정의 달 오월을 보내며 밀물처럼 밀려오는 그리움이 있습니다. 그 그리움의 끝자락에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잊지 못할 추억이 머물러 있습니다. 오늘은 유난히도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르는군요. 40여 년 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해에 우리의 곁을 떠나신 아버지!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혈혈단신 홀로되신 아버지는 가진 것 없이 온갖 고생을 다 하시며 어머니를 만나 우리 칠남매를 키우기까지 당신의 삶의 철학은 오직 근검절약이셨지요. 그 시대에 우리의 부모님들은 그 길밖에 살길이 없었던 공통된 신념이었지만 부모형제 의지할 곳 없으셨던 아버지께서는 자식에게만은 당신의 가난과 외로움을 물려주지 않으시려 안간힘을 쓰셨지요. 일평생을 소농가의 농부로서 농번기에는 말 할 나위도 없고 남들 편히 쉬는 농한기에도 쉴 새 없이 일을 하셨지요. 초가지붕에 소복이 눈 내리던 겨울날, 사랑방에서 지푸라기 먼지를 뒤집어쓰며 새끼줄을 꽈서 가마니, 멍석, 삼태기, 망태기, 동우리 등을 짚으로 다음해에 쓸 농사용품을 만드셨지요. 저는 어머니가 챙겨주시는 새참으로 동치미와 찐 고구마를 쟁반에 받쳐 들고 사랑방에 들어서면 탑세기가 아버지의 머리와 눈썹위에 뽀얗게 내려 앉아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버지가 금방 늙어버린 할아버지 같았지요. 거칠어진 손바닥과 지문이 안보일 정도로 닳아버린 손가락은 아버지의 부지런하고 성실한 모습을 대변해 주었지요. 아버지의 근검절약 교육은 생활에서 몸소 실천하셨고 온 가족이 둘러앉은 밥상에서도 이루어졌지요. 국에 밥을 말았으면 국 자체가 반찬이니 다른 반찬은 아껴라, 밥은 한 톨도 흘리지 말고 다 먹은 밥그릇은 물을 부어서 밥풀을 남기지 말고 깨끗이 비우라는 교육이 철없던 그때는 마냥 잔소리 같았지요. 평소에 허튼 낭비에 대해서는 우리들에게 그렇게 엄격하시면서도 집안에 제사나 생신 때면 이웃사람들을 초청하여 식사대접을 하셨지요. 이웃 분들을 모셔오라는 아버지의 심부름에 저는 아까운 생각이 들어 대충 몇 집 씩 빠트리기도 했지요. 그럴 때면 아버지는 용케 아시고 다시 가셔서 손수 모셔 오셨지요. 철부지였던 저는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지요. 형제가 없었던 아버지는 이웃을 사촌이라 여기고 사람은 먹는 데에 정이 붙는다고 먹을 일만 생기면 이웃사촌들을 불러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정을 나누고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아버지의 외로움을 달래셨던 것을 먼 훗날 깨달았지요. 대여섯 살 때쯤 우리 집에 전기가 들어왔지요. 아버지는 방안과 부엌 사이에 벽을 뚫어 작은 유리창을 내시더니 방에서 전등을 비춰 부엌까지 쓰게 하셨지요. 언니, 오빠들의 공부 외에 전깃불을 켜지 못하게 하셔서 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만화책을 보다가 들키는 날에는 쓸데없는 일에 전기가 닳는다고 불호령이셨지요. 추운 겨울에는 다른 방에 불을 넣지 않고 식구들이 한방에 모여 지냈지요. 아버지의 부지런하심은 곳간과 나뭇간에 겨우내 먹을 양식과 땔감을 마련해 놓으시고도 온 식구가 한방에서 지내면 가족 간에 우애도 깊어진다며 나무를 아끼시려는 마음을 감추곤 하셨지요. 갈수록 더해지는 가뭄에 농부들의 마음이 타들어 가는 요즈음, 물을 그렇게도 아끼고 사랑하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우리 집 우물물은 수질이 좋지 않아 허드레 물로 쓰고 식수는 다른 집 우물물을 길어다 썼는데 물 한 방울이라도 어찌나 귀하게 여기셨던지 새벽에 떠 올린 정화수처럼 신성시 할 정도로 소중하게 아끼셨지요. 길어온 물은 그 집에 신세도 끼치고 노동력을 감안하여 아낀다 치더라도 우리 집 우물에서 흔하게 퍼 올리는 허드레 물도 세수하고 나면 그 물로 빨래하고 걸레 빨고 청소한 후 마지막으로 꽃밭에 물을 주게 하셨지요. 그야말로 아버지의 삶 자체는 근면성실로 똘똘 뭉쳐진 근검절약의 대가셨지요. 아버지의 혈통을 이어받은 막내딸인 저의 삶속에도 어느덧 아버지의 근검절약정신이 배어 있어 세상에 아까운 것 없이 흔하게 쓰는 자식들에게 가끔은 잔소리를 하게 되더군요. 외할아버지께서 투철한 근검절약의 실천으로 어렵기만 했던 가정을 일구어 왔음을 알기나 할까요? 요즘 세상에 전설처럼 들리는 옛날이야기로 여겨질 법한 아버지의 추억을 꺼내 이야기 해 봅니다. 제 가슴속에 아로 새겨져 있는 당신의 삶이 한갓 나만의 추억이 아닌, 우리 집안의 가풍으로 면면히 이어져 나가기를 소망하며 먼 훗날, 나 또한 당신의 삶을 닮아 자식에게 ‘아버지의 추억’처럼 나에 대한 추억을 오롯이 남겨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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