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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공터에서’를 읽고
2017년 06월 15일 (목) 10:42:28 편집부 9319951@hanmail.net
   
▲ 예지회 손혜경
올해 예지회의 독서 토론 도서 중 하나인 김훈의 신작 소설 ‘공터에서’를 선택하고는 비어있는 공간이라는 그 제목의 의미가 무얼까 생각하며 첫 장을 펼쳤다. 김훈 작가 특유의 미사여구 없는 제 3자적 시각의 담담한 문체와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담백한 서술방식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큰 기복이나 반전 없는 지극히 현실적인 스토리의 전개가 오히려 책장을 수월하게 넘길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 시대부터 광복과 6.25 전쟁을 거쳐 베트남전,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 까지 우리나라 근현대의 시대적 배경이 펼쳐지고 그 시대의 환경에 따라 정해지는 필연이자 우연의 산물인 삶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마씨 집안의 둘째 아들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주인공 마차세. 아니, 이 소설에선 어느 특정한 한 사람이 주인공도 아니고 또 들러리인 사람도 없다. 주어진 자기 몫의 인생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게감은 모두 다 같은 거니까 그냥 편의상 이 책에서 가장 노출 빈도가 많은 그를 주인공이라 해 두자. 아버지 마동수는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국 상해를 떠돌다가 해방 후에 돌아와 6.25와 대한민국의 건립과 정착되지 못한 민주주의 시대의 초창기 시대를 살다 죽었다. 그리고 그의 두 아들, 마장세와 마차세. 1960년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장세, 그리고 우리나라 동부 전선 철책선에서 24시간 경계근무를 서는 GOP 부대에 복무한 차세. 이들 역시 나라와 역사의 흐름에 따라 그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운명대로 살아간다. 이들 형제의 어머니 이도순은 흥남 철수 시 남편과 어린 딸과 생이별 한 후, 남쪽으로 내려와 호구지책으로 군용 빨래를 하던 중 마동수를 만나 두 형제를 낳고 살게 된 것이다. 전쟁과 역사의 흐름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어쩔 수 없이 그 물살에 떠밀려 사는 게 사람이란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마장세는 베트남전에서 월맹군에게 패퇴 후, 부대로 귀환 중 심한 부상을 입은 동료를 권총으로 제거하고 귀환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죽은 동료와 자신이 훈장을 수여받은 후 그 마음의 부채와 나라와 가족이라는 끈끈함에 염증을 느껴 제대한 후 한국으로 오지 않고 괌으로 가서 고철수집 사업을 한다. 아버지 마동수와 어머니 이도순의 장례도 먼 거리와 시간 때문이라는 이유로 참석치 않고 동생 차세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늘 금전을 좀 넉넉히 보내는 걸로 자신의 역할을 상쇄한다. 마차세는 주간 경제잡지 기자로 겨우 3개월 근무하였으나, 계엄 정부의 언론사 통폐합 방침에 따라 해고된 후, 미술학원 강사로 일하는 아내에게 기대어 사는 것에도 한계를 느껴 위험부담이 많지만 오토바이 퀵 서비스 업체에 취직한다. 그러다 형 마장세가 고철업으로 알게 된 군대 동기 오장춘의 회사에서 일하게 되는데 군 시절부터 유류를 빼돌리며 나름 수완을 발휘하던 오장춘은 불법 폐차 처리와 마약 반입으로 경찰에 쫓기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형 마장세도 사업상 연루된 터라 3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간다, 차세는 형의 면회를 다녀오고... 그 후 마차세는 눈 오는 날 태어난 딸에게 ‘누니’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아내의 재촉으로 그 동안 지내지 않았던 부모의 제사를 지내며 여태껏 자기 혼자만의 삶이라고 생각했던 단편성에서 벗어나 대대로 이어지는 영속적인 삶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깨닫는다. 소설의 거의 끝부분 딸 누니와 같이 놀러간 놀이공원에서 딸에게 조랑말을 태워주는데 김훈 작가의 다른 소설에도 자주 등장하는 늙고 야윈 그 말을 통해 한평생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리며 힘겹게 살아야 하는 인간의 삶을 오버랩하여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마차세는 다시 구직 활동을 하며 물류 회사의 배송기사로 임시로 들어가고 생활인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당대의 현실에서 발붙일 수 없었던 선대 인물들에게 들은 이야기와 그들의 기록, 언행, 체취, 몸짓, 그들이 남긴 사진을 떠올리면서 겨우 글을 이어나갔다. 이 글을 세상에 내놓으며 그 기억과 인상들이 내 속에서 소멸하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후기를 읽으며 역으로 작가의 그 바람은 결코 소멸되지 않을 것이고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내 놓음으로써 하나의 선상에서 이어지는 점 같은 존재들을 더욱 소중히 기억하게끔 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마지막 장을 덮었다. ‘공터’라는 이 공간이 결코 비어있지 않을 것임을, 무언가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데 휑뎅그레한 마음을 위로하듯 오월의 미풍 한 자락이 살며시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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