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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손

2017년 09월 07일 (목) 10:39:09

편집부

9319951@hanmail.net


▲ 예지회 전명희

초등학교 동창생을 사십년 만에 만났는데 손을 보더니 “고생을 많이 하였구나." 라고 하였다.
이제야 내 손에 대하여 미안할 정도로 혹사시키며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음을 변명이라도 하고 싶은데 동창은 들은 척도 안했다.
도시에서 살다보니 예쁜 손, 부드러운 손만이 여자의 행복이라 느끼며 그렇게 생각하는가보다.
손은 우리 일상생활에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
나름 큰 행사 등이 많았던 단체에서 수십 년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꾸준히 봉사하면서 몸을 사리거나 아끼지 않고 열심히 준비하여 음식을 맛있게들 먹고 떠나가도록 묵묵히 주어진 내 일만 하였었다.
큰 솥, 작은 솥, 검게 탄 솥 등등 산더미처럼 쌓인 그릇들의 설거지도 마다하지 않았고, 행사장 쓰레기까지 말끔히 정리하고 나서야 귀가했었다. 시댁에서도 오형제의 막내며느리이다 보니 서울서 대구 시댁을 명절 때마다 앞치마와 고무장갑을 꼭 챙겨가곤 했는데, 음식 장만은 큰 형님이 하시고 뒷설거지 청소가 제일하기 싫다고 하셔서 늘 기쁜 마음으로 도맡아 하였다.
친정에서는 장녀로 태어나 어머니께서 아주 어릴 때부터 단련이라도 시키듯 심부름과 설거지 등을 잘 시키셨고 빨래, 청소도 언제나 나의 몫으로 알고 일하곤 했는데, 나 자신도 어느 모임에서나 몸을 사리지 않으니 나도 기쁘고 주변 모든 이들이 함께 기쁠 수 있기에 나도 행복하고, 여럿이 행복할 수 있어서 좋았다.
20대 때엔 한껏 멋도 부리며, 여동생의 빨간색 매니큐어도 손톱을 길게 길러서 바르며, 빨간색 원피스에 빨간 손톱으로 한껏 멋을 부리며 다녔던 추억도 아스라이 떠오른다. 환경은 더욱 나아졌지만 세탁기 없이 살며, 아이들의 기저귀와 옷을 손으로 빨래하고, 큰 이불도 큰 통에 넣고서 발로 밟아 빨기도 했었다.
세탁기가 있어도 옷감이 상할까봐 손빨래를 하면서 남매 키우랴, 남편 뒷바라지하랴, 손에 물이 마를 새가 없었으니 거칠어진 손이야 당연지사이다.
천성적으로 봉사하는 일이 좋아 수십 년을 지나오다 보니 일을 많이 하였다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거친 손이 대신 말해준다. 남편은 밖에서는 건축 시공 기술자로 빌딩, 공장들을 척척 건축하는 전문가인데도 집에만 들어오면 손 하나 까딱하기 싫어할 만큼 피곤해한다.
여자이지만 어지간하면 손수 톱질, 망치질에 혼자서 고치고, 옮기고 갈아 끼우고 하면서 부드럽고 고운 여자 손이라기보다는 일하는 거친 손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지나온 내 속사정이 이러하니 “고생께나 하였다” 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흑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 흙과 같이 썩을 육신이거늘 아름다움만 위하여 몸을 사리고 아끼기만 한다면 그 많은 3D에 속하는 일은 누가 해야 한다는 말인가? 곱디곱고 부드러운 손은 보고 만지는 촉감이야 좋겠지만, 작은 마디가 굵어지고 조금은 거칠어진 내 손이 부끄럽지는 않다. 남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기쁜 마음으로 잘 해내었기에 이젠 내 손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전원생활을 동경해오던 터라 서울서 보령으로 오자마자 텃밭부터 가꾸고 싶었는데 이사를 어찌하다 보니 시내에 있는 집이라 조그만 마당에 작은 고추밭을 만들었다.
음식물 찌꺼기를 썩혀 퇴비를 삼아 흙을 뒤집어주고, 지렁이 분비물 등은 자연거름에 아주 좋고 땅 속에 골고루 기공을 만들어 기름지게 한다는 농업진흥청 유기농 교육을 받고 여자의 몸으로 그동안 징그러워 손도 못 대던 지렁이를 맨손으로 만지며 자연농법을 배우는 중이다.
고추에 방울토마토, 피망, 쑥갓, 상추, 호박, 가지, 오이 등 골고루 심어 키워보았는데 가지와 피망은 실패하였다. 가지는 잘되는 토양이 따로 있다고 한다.
도로변 집이어서 이웃에 고추 등을 나누어 주곤 하였는데 텃밭이 작아 넉넉하게 못 드림이 아쉽다.
이웃과 나누는 삶이 나에게 주어진 건 정말 기쁜 일이다. 세상살이 바쁘고 각박하게 살지 말고 농부처럼 웃으며 덥석 잡는 손으로 환하게 웃는 세상을 살고 싶다.
모두가 서로 사랑하며 모두가 같이 행복하면 좋겠다.
천성인가? 모두가 하기 싫어하고 귀찮아하는 3D 힘든 일을 할 때 가장 기분이 좋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데 감추고 싶은 이야기를 한 것 같아 너무 부끄럽고 쑥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