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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백 (餘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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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 태 숙 예지회 |
이 땅 어느 지역이나 어느 곳을 다녀 봐도 마을이 조성된 곳은 영락없이 하천을 끼고 돈다.
지금이야 과학적인 설계로 교각을 세워 홍수의 피해를 최소화 하지만 그 예전 나무다리를 놓아 다니던 시절은 장맛비 피해를 예측할 수 없었다.
비록 여름철에 홍수의 위험요소도 배제 할 수 없다지만 인간은 물가 근처에 터전을 잡고 살기 마련인가보다.
물은 생명의 원천이기에 인간이나 동물 등 물과 뗄 수 없는 불가불의 관계가 분명하다.
물이란 화학적으로는 산소와 수소의 결합물이며, 천연으로는 도처에 바닷물. 강물. 지하수. 빗물. 온천수. 수증기. 눈. 얼음 등으로 존재한다.
물은 지구상의 기후를 좌우하고 모든 식물이 뿌리를 내리는 토양을 만드는 힘이 되고, 증기나 수력전기가 되어 근대 산업인 기계를 움직이기도 한다.
더욱이 물은 인류를 비롯한 모든 생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며 생체의 주요한 성분이 된다.
우리의 몸무게의 70% 정도가 물이니 그것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나라처럼 어느 곳이나 물이 흔한 나라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옛이야기다.
지금은 지하수가 더 오염되어 결코 수돗물보다 안심하고 먹을 수 없다고 한다.
구제역이나 조류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많은 소나 닭을 땅에다 매장했기에 지하수를 마음 놓고 마시기에는 왠지 꺼림칙하다.
이제 이 땅도 사막처럼 황폐하거나 메마른 곳으로 봐야 무방할 듯하다. 그러니까 마음 놓고 마실 물이 부족한 물 부족국가인 셈이다.
사막을 다녀온 적은 없지만 오아시스 주변에서 해골이 많이 발굴 된다고 한다. 50m~100m 가면 오아시스가 있는데 그곳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서 쓰러져 죽은 것이다.
한 모금의 생수를 마시지 못해 죽어간 자들을 생각해 볼 때 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구구한 설명이 필요 치 않다.
서천 생태원이 생기게 된 유래가 궁금해 여름도 거의 막바지로 접어든 어느 날, 그곳을 방문했다.
100년의 역사를 이어온 용화실 못은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이 논농사 지을 때에 요긴하게 물을 대주었던 곳으로 방죽이자, 둠벙의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국립생태원에서 가장 큰 못으로서 생태원 전체에 물을 공급하는 수원(水源)이자, 다양한 새들과 식물의 서식처로서 지금까지 그 역할을 톡톡히 해오고 있다.
큰고니. 흰뺨검둥오리. 원앙. 쇠오리. 고방오리 등 철새들뿐만 아니라 이곳은 텃새들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야트막한 둔덕위에 자리한 용화실 못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순리대로다.
어느새 짙푸르게 자란 갈대는 웃자란 듯, 곧 바람이 드센 가을이 오면 풀씨로 날아가 버릴 밤색의 원통형 열매를 달고 서있다.
넉넉하게 흐르는 물기를 머금은 채 울창한 긴 갈 대 숲에선 도요새가 숨죽이며 우리의 행동거지를 지켜보고 있을 듯하다
꽤나 긴 거리인 습지를 지나 그곳을 찾아든 시각은 하루 중 가장 기온이 높은 한낮이었다.
방문객의 발길이 뜸한 듯 작은 나무로 다듬어 오밀조밀하니 놓여 진 계단은 잡초가 무성했다.
눈앞에 펼쳐진 둥그런 용화실 못은 시간이 정지된 듯, 풀잎을 스치는 바람마저 잠이든 채 다소 적막감이 돌았다.
아니 그렇게도 보고자 했던 것들은 다 어딜 갔단 말인가. 그곳을 터전 삼아 지내는 텃새들조차 뜨거운 땡볕을 피해 수초 속에서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하긴 인간만 더위를 타는 것은 아니지. 털 가진 새들이나 짐승은 우리네보다 더 더위를 많이 탈 테니까. 동물을 위해 동물원이 지어진 평범한 근거와는 달리 국립생태원은 동식물이 서식할 수 있는 생태환경에 더 집중했던 것일까. 전국을 탐방하다가 이 곳 용화실 못이 존재한 이유로 가장 적합하기에 지어졌다한다.
가을이 문턱에 이르렀는데 어쩜 잠자리 한 마리 날지 않는 텅 빈 연못만을 바라보자니 문득 빛바랜 풍경 하나가 아슴푸레하다.
그 옛날 여인들이 방죽에 모여 모시적삼 둥둥 걷어 올리고 까만 고무신 말갛게 닦아 놓고는, 삼단 같은 머리채 감아 매만지던 모습이 나의 상상(想像)을 키우며 풍속화가인 신윤복의 단오풍정과 매치된다.
오래 전 선조들은 물이 고여 들던 연못의 물꼬를 길게 터서 양쪽 가장자리에 늘어 앉아 빨래를 빨 수 있게 만들었다.
방죽이란 여인들의 지루한 일상을 넘어 삶의 지루함까지도 뒷담화로 이어지던 곳이 아니던가. 시집살이의 고단함과 억울함도 방망이로 두들겨 대던 곳이라고 본다면, 스트레스를 분출시킬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던 것이다.
그곳에서 웃고, 울고, 왁자하게 떠들어대며 이 땅의 한 많았던 여인들이 자신들의 내면세계를 승화 시켰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방죽이야말로 삶의 요람이요, 그 시대의 여인들의 시대상을 반영해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비록 시각적인 즐거움이 배제된 고요함속에 잠긴 연못 이였지만 이 또한 여백의 미로써 우리네 삶에 감초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초원위에 노닐던 사슴 생태원의 풍경은 나른했던 일상에 활력을 더하여주며, 자못 더위에 지친 심신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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