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시민신문

보령시민신문을 시작페이지로 ㅣ 즐겨찾기에 추가 ㅣ

최종편집: 2024.4.25 목 14:48

추천도서 | 투고 | 칼럼

축하 | 부고 | 구인구직 | 알림 | 자유게시판

인기검색어 : 보령화력, 취임식

홈 > 뉴스 > 오피니언 > 칼럼

우렁쉥이 예찬

2018년 02월 28일 (수) 10:25:31

편집부

9319951@hanmail.net


▲ 서 태 숙 보령예지회

몇 년 전에 외도를 가기 위해 해금강 선착장을 찾았었다. 서해바다의 물빛이 그리 투명하지 않기에 남해의 쪽빛 바다를 보니 신비감에 마냥 부러웠다.

물론 지금은 갯벌의 유기체로 인해 바다가 더 건강한 생태계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고마울 뿐이다.

게다가 보령산 머드가 주는 유익을 포함해 갯벌은 다각도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을 여행하기 전에 부산에 살던 딸이 첫 아기를 출산해 돌봐주는 게 좀 힘에 부쳤었나보다.
다소 소진된 기운을 북돋기 위해 배를 타기 전 주변의 식당에서 점심으로 멍게 비빔밥을 먹었다.

미풍이 살랑이던 짙푸른 해금강을 끼고 유람선을 관광하는 내내 입안에서 감돌던 그 달달한 맛을 무엇으로 견줄 수 있을까. 딸의 산간호로 지친

몸과 마음에 생기를 더해주듯, 멍게는 봄 바다의 향을 입안에서 오롯이 느끼게 해줬던 기억이 새로웠다.

마침 TV에 거제 앞바다에서 양식하던 멍게를 수확하는 장면이 내 눈에 포착됐다.
그 청청한 바다에서 길게 줄줄이 딸려 나오는 우렁쉥이를 보면서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멍게로 말하자면 시각적인 자극이 충만하고 이차적으로는 젖꼭지처럼 솟은 돌기로 인해 촉각적인 자극에 충실하다.
정말로 잠자리에 누울 때면 붉디붉은 멍게의 돌기까지 까끌까끌한 촉감이 내 손끝에 닿는 듯 했다.

겨우내 먹어온 그저 그런 음식에 다소 질릴 때 즈음에, 선명하게 붉은 색깔만큼이나 강렬한 식감으로 사로잡는 바다의 진한 맛을 어찌 필설로 논할 수 있으랴!

예전에 어머니가 시장에서 채소가게를 하셨었다.
자주 가게 일을 돕다보니 특히나 이른 봄, 안개가 자욱하던 날에는 자연히 멍게에 눈길이 갔다.
그 시절에는 멍게장수들이 리어카에다 수북이 쌓아놓고는, 손질한 멍게를 옷핀으로 꿰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게 하였다. 나도 가끔은 그렇게 시장바닥에 서서 멍게를 사먹곤 했다.

멍게는 아미노산과 타우린 등이 풍부하고 효능으로는 노화방지와 당뇨병을 예방해준다고 한다.
그러니까 겨울동안 보충하기 쉽지 않은 영양분을 멍게를 먹어줌으로서 몸에 활력을 공급해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나는 일 년에 서너 차례 씩 거제를 방문해 멍게 비빔밥을 먹곤 했었다.
그런데 아들이 서울로 거처를 옮긴 후로는 남해를 가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심신이 지칠 때마다 드나들며 고즈넉하게 쉴 수 있었던 환기처가 사라진 셈이다.
못내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며칠 동안 멍게의 맛을 그리워하던 중, 남편이 출타한 틈에 농협에서 빵빵하게 해수에 담긴 멍게를 사왔다.
장 봐온 것을 꺼내던 순간 멍게 봉지를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래 전, 동네잔치에 참석해 신선도가 떨어지는 멍게를 먹고는 온몸에 두드러기가 솟았던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식구들은 멍게 타령을 하는 내게 “멍게를 먹고 그렇게 혼이 나고도 멍게가 좋아요?”라고 놀려 댄다.

그런 이유로 혼자 있을 때 멍게를 사다 먹는다. 평소에 음식 욕심이 없는 편인데도 다섯 개를 게눈 감추듯이 해치우고도 양이 덜 찼다.
하지만 더 사 먹기에는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해수욕장에서 수산업을 하는 제부가 이런 얘기를 전해들은 뒤 어느 날, 멍게 한 자루를 가져왔다.
그야말로 멍게 잔치를 벌여도 될 판이었다. 일부는 멍게 젓을 담그고 남은 것은 비빔밥을 여러 차례 해 먹었다.

먼저 깨끗이 손질한 멍게를 잘게 썰어 구운 김에 비비어 넣고 상추를 사각사각 채쳐서 넣는다. 그런 다음 참기름을 한 방울 떨어뜨려 초고추장에 비벼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아마 어머니가 바닷가에 살면서 굴을 찍어다가 음식을 해 먹였기에 지금의 나도 신선한 해산물을 즐기는 것이리라. 멍게 비빔밥 한 그릇으로 느낀 기분 좋은 포만감을 시 한편에 담아 본다.

봄비
남도의 끄트머리인/
장승포 언덕배기에 올라/
정온한 마음으로 비 내리는 항구를 내려다봅니다.//

해수면의 자욱한 안개는 봄이 오는 길목인 듯.../
키 작은 앉은뱅이 수선화가/
이 비를 맞으면 꽃대가 성큼 올라올 것입니다.//

바다 속 우렁쉥이도/
선홍색 붉은 빛깔로 봄맞이 단장을 하겠지요.//

저~~멀리 지심도 동백을 보기위해/
불원천리 달려온 이들을 싣고/
부지런히 오가는 연락선을 보니/
어릴 적 기억들이 가뭇하게 떠오릅니다.//

이곳의 붉은 동백이/
새봄을 예시하듯/
저들도 삶의 한 편을 고운 빛으로 물들여 갈 것입니다.//

멍게는 내게 그냥 좋아하는 선호식품으로 만의 의미가 아닐 것이다.
해마다 봄이 오면 잠재돼 있던 상처로 인해 신열에 들뜬 번민과 방황을 멍게로 잠재웠다면 지나친 말일까.

그것은 잊고 지냈던 내 젊은 날의 초상(肖像)을 고스란히 떠오르게 하는 음식, 그 이상의 추억을 부여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