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시간이 지나니 이제야 보이는 것들 = |
|
|
|
|
| |
 |
|
| ▲ 보령 예지회 이 정숙 |
지난 가을에 보령 시내에 ‘마을 만들기’ 플랜카드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우리 마을도 충청남도 행복문화 마을 만들기 사업에 당선되어 시작 단계에 여러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고 선진지 견학을 여러 곳을 다녀왔기 때문에 관심이 간다.
강위원이 쓴 책 [기적 아닌 날은 없다.]를 읽게 되면서 마을 만들기가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지난날의 나를 반추할 수 있는 뜻 깊은 시간도 되었다.
‘여민동락 공동체’ 역사가 시작될 때 기대와 설렘 속에 큰 포부를 갖고 농촌생활에 도전하는 그들의 마음가짐이 나와 비슷하니 끌림으로 다가왔다.
그 공동체는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낮은 자세로 임하며 날마다 실패를 받아들이며 천천히 나아갔다. 그들은 겸손하게 중심보다는 변방이라 생각하면서 스스로 지역사회에 뿌리 내리며 살아가는 것이 내가 겪었던 수많은 힘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예전의 어려움이 생각나서 처음에는 답답함으로 밀려왔다.
공동체가 자립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싶다. 봉사하는 사업 중에 마을 곳곳을 다니며 방역을 하는 일과 동락점빵 운영은 마을에서 사라지는 구멍가게들의 역할을 해주고 잔심부름도 마다하지 않고 사랑을 싣고 정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지극히 평범한 시골 생활 같지만 사람들과의 관계형성이 쉽지 않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한 대가를 치러내야 얻을 수 있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귀촌이든 귀농이든 전사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기보다는 은은하게 스며들어야 할 것이다.
나는 축산을 전공한 남편을 따라 1992년 4월에 보령시 남포면에 위치한 작은 용두마을에 내려왔었다.
물안개 가득한 정경이 참으로 포근하고 아름답게 느껴졌지만 앞날이 안개처럼 뿌옇게 다가올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친정큰아버지와 일가친척 분들 계신 이곳으로 내려온 것은 친척 분들이 계셔서 바람막이 되어 주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동네 분들은 배운 사람들이 시골에 왜 내려 왔냐며 처음에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다.
일도 안 해본 사람들이 의욕만 앞서서 지쳐서 얼마 안 있다 올라 갈 거라는 말들을 하셨단다.
남편은 보령시 농업기술센터를 찾아가 자문을 구하고 토종닭을 키우기로 했다.
비용절감을 하기 위해 비닐하우스를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고 우리가 직접 만들기로 했다.
v
자재를 들여오는데 길이 좁아서 긴 하우스 파이프를 큰 도로에 내려놓고 갔다.
그 많은 것을 작은애를 업고 우리부부는 파이프를 어깨에 메고 하루 종일 날랐다.
어깨가 부어올랐고 허리가 끊어지게 아팠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거창한 생각뿐이었다.
아픈 것은 뒷전이고 아침이 되면 거뜬히 일어나 일을 하곤 했다.
비닐하우스를 짓는 것이 그토록 힘들고 어려운 거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시작도 안 했을 것이다.
토종닭을 키우기 위해 비닐하우스를 처음 지을 때 면 직원들과의 접촉 또한 두려움이었다.
절대 농지에서는 비닐하우스를 지을 수 없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왔었다.
v
생존의 절박함과 열심히 살려는 진실함이 느껴졌는지 비닐하우스를 뜯어야 한다고 말만하고 직접 뜯지는 않았다.
몇 년 후에 다행히 절대농지가 풀려서 목장용지로 변경하게 되어 불안하게 지내던 선량한 우리는 범법자(?)가 되지 않았다.
꿈의 실현을 하기도 전에 시련은 또 다가왔다.
토종닭을 다 키워놓고 출하하기 일주일 남겨 놓고 국지성 폭우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농장이 침수가 되어버렸다.
처음에는 하우스 안으로 물이 들어올 때 정신없이 물을 퍼냈는데 순식간에 발목이 잠길 정도로 빗물이 차올랐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 눈앞에서 벌어지니 허망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애지중지 키운 닭들을 묻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무슨 여력으로 다시 시작한단 말인가. 속상함과 안타까움 속에 다행히 친정의 도움으로 다시 병아리를 입식하게 되었다.
긴 시간의 고통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힘과 견뎌내야만 한다는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탄탄대로가 아닌 험난하고 거친 길을 걸어왔지만 오랜 세월 속에 단단한 뿌리를 내려가고 있음을 느낀다. 시행착오로 겪게 된 수많은 일들이 결코 실패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비싼 수업료를 내고 얻은 값진 경험들이었다고 위로하곤 했다.
살면서 겪어낸 경험들이 큰 자산이 되고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보이는 안목도 생기는 것이다.
귀촌해서 살아 온지 25년의 세월 속에 이제는 보령사람으로 자리매김하고 살아가고 있고 작은 시골 마을의 일원이 되어 더 낮은 자세로 어르신들 이야기를 경청하고 도울 일이 있으면 도와 드리고 도움도 받고 살아가고 있다.
어디에서 살든 이기적인 생각으로 살면 그 이상의 고통이 따라올 것이다.
텃세에 떠밀려 적응 못하고 떠나는 귀촌 귀농 인들을 많이 봤다.
지난세월을 담담하게 말할 수 있게 되어서 나 스스로에게 대견한 마음이 든다.
이제는 내 앞가림에서 벗어나서 동네일에 미약한 힘이나마 도울 수 있게 된 것도 뿌듯하다.
우리 용두마을도 젊은 이장의 열정으로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희망적인 변화가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마을로 거듭나길 바란다. |
|
|
|
|
 |
전체기사의견(0) |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
|
|
|
| 전체기사의견(0) |
|
|
|
|
931995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