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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완의 보령문화 산책 2
외연도 동백을 찾아서
2019년 03월 20일 (수) 09:22:32 편집부 9319951@hanmail.net
● 동백 찾아 서해 뱃길 150리

<수령 800년 외연도 동백나무에 붉게 핀 동백꽃>

추운 겨울을 나와 봄의 문턱에 들어서면 외연도는 동백꽃으로 붉게 물든다.

당산 상록수림에는 후박, 팽나무와 함께 동백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여기 동백나무는 수령 800년 이상 7~8m 높이의 큰 나무들이 많다.

키 큰 동백나무를 올려다보노라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붉은 꽃과 녹색 잎이 어우러져 참 보기 좋다.

뭍에서 기껏해야 3~4m의 동백나무만 대하다가 외연도 당산 하늘을 가린 커다란 동백나무 숲을 보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동쪽 건너 봉화산 꼭대기(280m)를 오르는 비탈 언덕에는 동백이 그득하다.

그 동백나무들은 군인들 열병하듯 빈틈없이 딱 붙어 줄지어 서 있는데 나무마다 먼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서도 붉은 꽃망울을 흐드러지게 터뜨린다.

저녁에는 서쪽 망재산과 당산 사이로 외연열도에 딸린 청도를 배경으로 해지는 것이 장관인데, 그 때 외연도 여기 저기 동백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것 또한 큰 감흥이 아닐 수 없다.

외연도 동백꽃은 흰 눈이 내리는 한 겨울부터 따뜻한 남풍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늦은 봄까지 이어진다.

섬의 여기저기 붉게 피어나는 꽃들은 여지없이 나무 아래 붉은 주단을 깔아놓은 모습을 연출해내곤 한다.

제주 카멜리아힐, 울릉 성인봉, 여수 오동도, 강진 만덕산, 고창 선운사, 서천 마량리 동백도 좋지만 여기 외연도 동백 보는 재미는 또 다른 맛이 있다. 푸른 하늘 아래 붉은 꽃 피어내는 당산의 동백은 고결하기 그지없어 사육신 성삼문이 ‘설중동백(雪中冬柏)’에서 말한 것처럼 고결하기가 매화보다 나은(高潔梅兄行)’ 형국이다. 또 봉화산 비탈 언덕 길 찬 바닷바람 이겨내고 피어나는 동백은 고려사람 이규보가 말한 것처럼 송•죽•매(松•竹•梅)와 함께 '엄한지우(嚴寒之友)’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이른 봄에 외연도 동백을 보려면 대천연안여객선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호도-녹도 경유의 정기여객선을 타야만 한다. 10월 1일부터 다음 해 3월 31일까지 겨울철에는 하루 두 차례씩 출항했다가 내내 같은 배로 되돌아 나올 수 있다. 아침에 들어가 당산과 봉화산 동백을 즐기고 당일 오후에 나올 수 있어 필자도 20여 년 전부터 매년 동백이 필 때면 으레 지인들과 함께 외연도행 여객선에 오르곤 하였다.

● 가고 싶은 섬 외연도

외연도는 대천 어항에서 약 60여 km 떨어져 있어 여객선으로 가려면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인구 500여 명이 거주하는 비교적 큰 섬이다. v
주민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연근해에서는 멸치, 전복, 해삼, 새우, 꽃게, 우럭, 까나리, 놀래기, 홍어 등 다양한 어종이 잡히며, 자연산 김과 미역, 굴 등이 채취되고 있다.

당산에는 중국 제나라(전국시대 7웅 하나 齊에 뿌리를 두고 秦/BC 221~BC 206/이후 楚漢爭霸期에 나타난 산둥 지역 국가) 전횡(田橫)을 당신(堂神)으로 모신 당집이 있는데, 지금도 매년 정월 보름에 장군을 추모하며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

전횡장군과 그를 추종하는 500 빈도들이 나라 잃은 설움과 변치 않는 충심으로 끝내 목숨까지 던져 여기 외연도의 당신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외연도 동백이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면서도 꿋꿋이 붉게 피어나고, 질 때마저도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통째로 뚝 떨어지는 것이, 마치 저 제나라 전횡과 그를 따르던 500여 동덕지사가 기꺼이 순절하는 모습과 많이 닮았다.

외연도는 섬이지만 해변과 숲 그리고 산을 둘러보는 길이 오밀 조밀 여럿이다.

길마다 앞에 펼쳐진 전경이 다양하고 길가엔 어김없이 동백꽃이 피어나 지루함 없이 즐겁게 걷기에 좋다.

먼저 선착장에서 초등학교로 난 길을 따라 곧바로 동북쪽으로 돌아 나오는 마당배 둘레길을 산책하는 것은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꿈길을 걷는 기분이 든다.

해변의 너럭바위, 먼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훤한 언덕, 옛날 섬 주민들이 땔나무를 모두 감당하던 깊은 숲, 동백군락을 지나는 길이다.

<① 명금 → 노랑배 → 마당배 → 방파제>로 한 바퀴 돌아 나오는데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다음은 초등학교에서 오른쪽 당산을 돌아 나오는 길이다. 여기는 오랫동안 사구가 쌓여 마을이 들어서고 야트막한 언덕 같은 산엔 당집이 지어져있다.

여기 당산 주변을 돌아 나오는 길은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면서 걷기에 지루하지 않다. <② 당산 → 돌삭금 → 매바위 → 상투바위 → 누적금>을 돌아보는 길이다.

서남쪽으로는 망재산을 둘러싸고 <③ 일출전망대 → 고래조지 → 사학금 → 고라금>을 돌아보는 길이다.

여기 고라금을 지날 때면 해변 너럭바위 틈 사이로 제법 큰 돌들이 파도에 밀려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 옛날 뱃놀이 왔다가 사고로 희생된 기생들이 뱃놀이하면서 치던 장구소리가 아직도 멈추지 않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v

또 무엇보다 재미있는 길은 봉화산을 올라 멀리 남쪽 어청도를 조망하고 북쪽으로는 녹도가 보이는 봉수대에 들르는 길이다.

정상에 있는 봉수대는 충청수영성 관할의 권설봉수(權設烽燧)로 연대(煙臺)와 연조(煙竈)가 그대로 남아 불을 지피면 곧바로 활용될 수 있을 정도다.

외연 봉수에서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와 노랑배를 지나 해막과 명금을 돌아 나오는 길도 참 좋다.

정리하면 <④ 초등학교 – 봉화산 – 노랑배 – 해막 – 명금>을 가는 코스이다.

사방으로 펼쳐진 전경이 태고의 모습 그대로 여서 혹 훼손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어디 그뿐인가? 외연도에 들른 이의 입맛 돋우는 먹거리도 동백만큼이나 신선하고 풍성한 곳이다.

선착장 주변 밥집들은 먼 바다에서 잡히는 우럭, 놀래기 등으로 매운탕 혹은 지리 탕을 내놓는데 그 맛이 달고 깊어 환상적이다.

최근엔 전복도 많이 생산되고 있다고 한다. 돌김, 미역, 톳 등이 좋고 방풍, 달래도 지천이다. ● 진실한 사랑 동백 이야기

‘진실한 사랑’을 상징하는 동백 이야기를 하려면 「춘희(椿姬)」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원제목 는 ‘동백꽃을 들고 있는 여인’의 뜻으로 ‘듀마 피스’가 지은 희곡이다. 프랑스판 「춘향전」처럼 신분의 벽을 뛰어넘는 남녀 간의 사랑을 담아내고 있다.

춘희’는 여주인공 마르그리트 고티에의 별명이다.

미모의 고급 창녀인 그녀는 폐질환으로 향기 없는 동백꽃을 달고 다녔는데 한 달의 25일은 흰 것, 나머지 5일은 빨간 것을 들고 극장이나 사교계에 나타나 귀부인처럼 생활한다.

어느 날 그녀에게 유력한 가문 귀공자 청년 아르망 뒤발이 정열적인 사랑을 바치자 참된 사랑을 발견한다. 결국 두 사람은 파리 교외의 아담한 보금자리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수입이 없어 곤란을 겪게 되고 아르망의 아버지가 찾아와 아르망과의 관계를 끊을 것을 요구하자 그녀는 참된 사랑의 길이 아르망과 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응낙한다.

아르망의 앞날을 위해 고티에는 그의 곁을 떠나 예전 생활로 돌아간다.

아르망은 고티에의 변심(?)에 고향에서 우울하게 지내지만 얼마 후 파리로 돌아와 복수, 번민, 방탕의 타락한 생활을 한다.

고티에는 어느 날 아르망을 찾아가 방황하는 아르망을 위로하였지만 그녀의 진심을 짐작조차 못한다.

고티에는 점차 병이 깊어지고 사력을 다하여 부치지 못한 사랑의 편지를 매일 썼다.

어느 겨울 새벽에 아르망의 이름을 두세 번 부르며 숨을 거두고 만다.

아르망이 늦게나마 진실한 사랑을 알고 파리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녀 무덤에 동백꽃 한 다발 바치고 회한의 눈물을 흩뿌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탈리아 국민 작곡가 베르디가 프랑스 여행 중 춘희 공연을 보고 단박에 만들었다는 오페라 <라트라비아타>는 오늘날 전 세계에 ‘진실한 사랑’의 숭고함을 알리고 있다.

이미자의 애잔하면서도 청아한 목소리의 ‘동백 아가씨’는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 → 레코드판 → 영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퍼져나갔다.

당시 국민들은 일제 압제에 대한 울분과 한국 전쟁으로 사회적 우울증에 빠져있었고 국민 생활은 궁핍과 가난으로 희망의 빛을 찾기 어려웠다.

이러한 때 국민들의 심금을 울리고 한을 달래준 노래가 있었으니 바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였던 것이다.

노래는 35주 연속 방송 차트 1위를 차지하였고 노래가 담긴 레코드판은 최초 100만장 이상 판매되는 놀라운 기록을 남겼으며 나라 전체 레코드 판매량의 70%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최종 300만장 이상이 팔려나갔다고 한다. 지금까지 트롯 가요 중 레코드판 판매량에서 장윤정의 ‘어머나’ 다음이라 하지만 시대와 시장 상황을 생각하면 역대 최고 판매라고 말하는 이가 많다.

이 노래는 현해탄 건너 일본 열도를 들끓게도 하였다. 일본 속 최초 한류인 ‘동백아가씨’는 급기야 일본어로 취입되고 현지에 가수가 진출 공연하게 되었다.

얽힌 이야기도 노래만큼이나 극적이다. 곡을 만든 백영호와 노래 말을 만든 한산도는 부산의 무명 예술인이었지만 이 노래 한곡으로 서울 중앙 무대로 진출하여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노래도 본래는 당시 최고 인기가수에게 부르게 하려 했으나 개런티를 너무 많이 요구하자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배불뚝이 아줌마 이미자에게 돌아갔는데 곡과 목소리가 그렇게 잘 맞을 수가 없었다.

젊은 따이한의 피와 국가 재건 자금 사용의 달러를 맞바꾸었던 월남 파병에서도 위문 공연 가수들은 피날레 곡으로 반드시 동백아가씨를 불렀다고 한다. 그것은 가수가 누구이건 그 뜨거운 나라에서도 당시 대한민국 사람을 하나로 만들고 감동시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노래였던 것이다.

또 당시 정부 당국자들은 대일청구권 협상의 필요에 의해 어느 날 이 노래를 왜색 가요라고 하여 금지곡으로 지정하기도 하였다.

1987년 해금될 때까지 지하에서만 불린 어둠의 노래라는 우여곡절을 거치기도 하였으며 영화로 만들어져 배우 엄앵란과 신성일을 한국 최고 스타로 만들기도 하였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동백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 못할

그 사연을 가슴에 안고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아가씨 가신님은

그 언제 그 어느 날에 외로운

동백꽃 찾아오려나.

다산의 동백사랑도 의미심장하다. 다산은 늘 동백꽃을 곁에 두면서 쌓인 울분을 이겨내고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 잡아 끝내 큰 학문을 이루었다.

동백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바로 다산 정약용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정약용을 언급할 때면 으레 그의 이름과 함께 다산(茶山)이란 호를 지칭하기 일쑤인데, 옛 사람들은 동백을 산다(山茶)라고도 불러서 茶山과 山茶가 그 이름만큼이나 무슨 인연이 있지나 않나 늘 궁금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다산은 산다를 몹시 좋아하였고, 특히 유배형으로 생겨난 울분, 시련, 고독이 엄습할 때마다 그를 이겨내려 무진 애를 썼는데, 자신이 머무르는 곳에 茶山草堂을 꾸미고 뜰에는 동백을 심어 가꾸며 그 꽃을 바라보는 것으로 많은 위안과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바로 그 자리에서 그는 18년 동안 500권의 여유당전서 등 수 많은 저술을 남겼고, 깊고 따뜻한 사랑으로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기도 하였다.

우리들은 오늘날 우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그를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이 위대한 정치가이자 천재적인 학자를 저 암울한 고독과 시련 속에서도 끝까지 지켜내고 끝내 좌절하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아 준 것은 다름 아닌 산다(山茶) 바로 동백이었던 것이다.

유배 길의 정약용 형제는 후일을 기약할 수 없었고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있었다.

집안은 풍비박산으로 몰락하고 육신은 온갖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정약전, 정약용 형제는 1801년 음력 11월 21일 저녁 무렵에 두 번째 귀양지 강진과 흑산도의 마지막 갈림길인 나주 북쪽 5리 지점의 밤남정(栗亭) 주막집에 도착한다.

동지섣달 그 추운 날 밤 형제는 서로 몸을 부비며 함께 잠을 청하였지만 쉽게 잠은 오지 않았다.

형제는 다음 날 아침 일찍 각자의 귀양지로 떠나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밖으로 나온 정약용은 동백꽃(山茶花)이 핀 것을 보고 나름 크게 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그 정경이 정약용이 직접 지은 다음의 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북풍이 흩날리는 눈처럼 나를 몰아

남쪽의 강진 밥 파는 집에 당도케 했네.

나그네 근심 끄게 해주는 겨우 한가지 일

동백꽃이 설전에 벌써 활짝 피었네.

北風吹我如飛雪 南抵康津賣飯家 一事纔能消客慮 山茶已吐臘前花 ● 보령시화 동백을 사랑하며

동백꽃은 보령시를 상징하는 꽃이다. 보령시청 홈페이지에도 다음처럼 동백꽃 그림과 함께 소개된 글이 있다.

동백의 꿀을 빨아먹고 살아가는 동백새에 의해 수정되고 화사하면서 깊이가 있어 봄철의 대표적인 꽃나무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주로 해안지역에 서식하여 우리나라의 바다, 해수욕장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에 아쉬운 부문이 있어 볼 때마다 얼굴이 붉어지지 않을 수 없다. 위 동백새는 동박새의 잘못 표기여서 바로잡아야 한다.

바다나 해수욕장을 상징한다는 말은 그 근거를 찾기가 어려워 당혹스럽기도 하다.

꽃의 특징이나 꽃이 상징하는 것이 제대로 언급되고, 동백꽃에 담겨진 좋은 뜻을 보령시민이 닮아가야 하는 정신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동백꽃을 상징으로 정한 타•시군은 다음 표와 같이 많다.

저마다 나름대로 동백꽃을 관광자원으로 잘 활용할 뿐만 아니라 홈페이지 등에도 꽃의 특징, 상징을 잘 나타내어 부럽기도 하였다. 광역 기초 총수 경북 울릉군 1

부산 영도구, 해운대구 2

경남 통영시, 거제시 2

전남 고흥군, 완도군, 여수시, 광양시, 해남군, 진도군, 강진군, 장흥군 8

전북 고창군, 군산시, 2

충남 서천군, 보령시, 태안군 3

제주 서귀포시 1

계 19 이 중에서 우리 인근 태안군과 서천군만 하여도 ‘그들의 동백사랑과 정성 가꾸기’야말로 뛰어나고 창의적이다. 참으로 배울 점이 많다.

서천군은 일찍부터 비인면 마량리에 동백나무 숲을 조성하고 <동백 관련 테마 꾸미기, 정자 등 볼거리 만들기, 쉼이 있는 산책길 내기>로 공원화 하였다.

이제는 마량포구 등 주변 해산물과 함께 전국 유명의 동백 관광지가 되었다. 최근엔 군산시를 건너는 다리 이름을 동백대교라 명명하고 동백고장임을 과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뿐인가 서천을 상징하는 홍보물마다 동백을 새겨 넣어 동백 피는 최북단(?) 고장이라 선전하고, 서천군이야말로 동백이 피어날 정도로 물산이 신선하고 건강하며, 서천 정서도 ‘매우 진실하며 곱다.’는 이미지를 제고하고 있다. 또 태안군은 어떠한가? 최근 안면도 꽃지 해수욕장 인근에 대단위 동백숲을 조성하여 태안을 찾는 이로 하여금 동백 피어나는 즐거운 산책길을 만들고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소원면 천리포수목원이 과거 목련 중심이었는데 다양한 동백을 식재하여 태안군이야말로 동백이 잘 어울리는 지역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격렬비열도 등에 자생하는 동백을 크게 홍보하고 동백이 주는 이미지를 태안군 이미지로 재포장하고 있다.

우리 보령시는 어떠한가? 홈페이지에 보령시 상징화 동백꽃을 부실하게 소개하는가 하면 독산, 무창포, 용머리, 대천 해수욕장 등과 인근 섬들에는 이러한 동백이 잘 자라는 조건이면서도 제대로 가꾸질 못하고 있다.

우리 지역에도 동백이 피어나는 산책길이 조성된다면 더욱 멋있을 텐데 그렇지 못해 못내 안타깝다.

우리 보령에서 동백을 잘 가꾸어 외연도 동백에 얽힌 이야기처럼 진실하고 아름다운 겨울철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었으면 한다. 동백을 잘 가꾸고 보령시 상징으로 자리매김한다면 우리 보령이야말로 동백처럼 신선하고 건강한 물산이 나고, 또 동백처럼 진실하고 고운 인심을 자랑하는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 이어 다음 <신재완의 보령문화 산책 3>은 ‘조선 조운선 지켜낸 남포 여도재 봉수대’를 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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