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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시라크!
2019년 10월 19일 (토) 11:31:05 편집부 9319951@hanmail.net
   
▲ 김영모·충남대교수
지난 9월 30일 향년 86세의 일기로 타계한 시라크(Chirac) 전 프랑스 대통령의 장례식이 마크롱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파리 앵발리드(Invalides) 성당 광장에서 국장으로 엄수됐다. 이날의 장례식은 프랑스 국영 TV로 생중계됐다.

오전 10시 반 장례식이 시작되자 3군 의장대 사이로 마크롱 대통령이 걸어 나와 군의 사열을 마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광장 중앙으로 국방부장관과 함께 걸어 나왔다.

이어 프랑스 국가가 연주되고 10명의 군인의 어깨에 메인 시라크 전 대통령의 관이 광장으로 운구 되었다.

관이 도착하자 마크롱 대통령이 다가가 관 앞에서 엄숙하게 경의를 표했다.

이어 군악대의 장송곡이 연주되었고 그 연주가 끝나자 그의 유해는 성당 서문으로 다시 운구되어 나갔고 마지막 가는 그 길을 마크롱 대통령이 따라가면서 국장이 모두 마무리됐다.

이어 시라크 대통령의 유해는 프랑스 경찰 오토바이의 호위를 받으며 지근거리에 있는 생 쉴피스(Saint Sulpice) 교회로 옮겨져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고인의 유해가 앵발리드 성당을 빠져나가자 노트르 담 성당의 조종이 파리시에 울려 퍼졌다. 지난 4월 15일 노트르 담 성당 화재 이후 첫 타종이었다. v
이 날의 가족장은 파리대주교인 오쁘디(Aupetit) 주교가 집례했고 그는“시라크 대통령이 프랑스를 넘어 전 세계 인류의 공영을 위해 일한 위대한 프랑스 사람이었다”고 평하였다.

이 자리에는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한 전 세계 80여개 국가에서 참석한 귀빈을 비롯하여 데스텡, 사르코지, 올랑드 등 프랑스 5공화국의 전직 대통령 3명과 좌우파의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종교미사로 집례한 가족장의 말미에는 세계적인 지휘자겸 피아니스트인 바렌보임이 슈베르트의 즉흥곡을 연주하여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장례미사 후 시라크의 유해가 밖으로 나오자 광장에 운집해있던 수많은 시민들이 경의의 박수로 그를 맞이했다.

이것이 TV로 생중계된 프랑스 전직 대통령의 장례식의 전부다.

국장이 치러진 앵발리드 성당 광장엔 그 흔한 조화 한 송이 보이지 않았고 진행사회자는 물론대통령이나 기타 인물들의 그 흔한 조사도 없었다(서거 다음 날 마크롱 대통령은 국영 TV 메인뉴스 시간에 10분간 대국민 추도사를 발표했다). v
국장에서 눈에 띤 것은 3군을 대표한 국방장관이 군 통수권자인 현직 대통령을 보필해 전직 국가원수에 대한 국가차원의 예우를 했다는 것이다.

그의 장례미사 또한 파리대주교의 집례 하에 엄숙하면서도 경건하게 진행됐을 뿐이다.

시라크 전 대통령이 누구인가?

국회의원, 파리 시장(18년), 장관, 수상(2회), 대통령(2회) 등 그야말로 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이 탄생한 이래 프랑스현대사 40여 년을 함께한 정치거물이었다.

그래서 시라크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의외였고 이것은 비단 나만의 느낌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튼 TV로 바라본 시라크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조촐했다.

하지만 외형적인 장례의식과는 달리 시라크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크게 달랐다.

그가 타계하자 마크롱 대통령은 엘리제 대통령궁에 그의 빈소를 마련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그의 추모행렬이 엘리제궁과 앵발리드 성당까지 수 킬로미터로 이어졌다.

어디 이뿐인가? 그가 살다 숨을 거둔 파리 6구 트뤼롱 가에는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그의 집 앞엔 조화가 수북이 쌓였다.

특히 그의 선거구인 프랑스 중부 꼬레즈(Correze) 마을은 전 주민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명복을 빌었다. 그리곤 국장이 치러지던 30일은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되었고 1분간 추모묵념이 진행됐다.

또한 전국의 학교에서는 고인을 추모하는 특별 수업을 편성했다.

이처럼 이날 프랑스에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시라크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왜 이토록 프랑스 국민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가?

이것은 그가 40여 년 동안 정치인으로 보여준 언행 그리고 국민을 위한 정치 때문이다.

그는 파리태생이지만 자신이 선거구로 선택한 꼬레즈란 프랑스 중부의 농촌마을을 평생 떠나지 않았다.

그는 시간 있을 때마다 이곳을 찾아 농민들과 어울리고 그들의 어려움을 경청하며 정책에 반영했다.

특히 그는 농림부장관으로 재직 시 전통적인 농업국가인 프랑스가 나아가야할 농업정책과 농민보호에 적극 앞장섰다. 그래서 그가 생전에 가장 관심을 갖고 찾았던 것이 프랑스 농업박람회였다.

여성인권을 위한 낙태법을 비롯한 18세 선거권 등은 그가 총리로 재직하면서 이뤄낸 성과중의 일부다.

그는 파리 시장으로 18년 동안 재직하는 동안 파리의 빈민촌을 수시로 찾아 시민들의 어려움을 듣고 민원의 해결에 앞장섰다.

또한 그는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전 세계, 특히 소외된 지역인 아프리카, 레바논 등을 찾아 평화와 번영을 위해 노력했다.

특히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해 파병을 거부하여 세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프랑스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비시정부가 저지른 유태인 추방의 책임을 시인했고, 지구 온난화를 염려하며 “우리들의 집이 불타고 있는데 우리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라는 유명한 화두를 던져 파리기후협약을 앞당기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은 그를 “이웃집 아저씨, 큰 오빠, 아버지”라 부르며 그의 따스한 인간애와 조국애를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그는 파리정치학교와 국립행정학교를 나온 프랑스 최고의 엘리트이자 지성이면서도 서민과 아울리며 이들의 편에서 아픔을 함께 공유하며 위대한 조국 프랑스의 미래를 향한 비전과 정책을 추진했다.

그래서 제5공화국 이후 가장 위대한 프랑스 대통령이었다”며 프랑스 국민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한 것이다.

현직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의 공적을 치하하며 그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었고 국민들은 생전에 그가 행한 업적을 추모하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또한 그의 가족들은 평범한 가장이었던 아버지를 추억하며 국립묘지가 아닌 파리 몽파르나스 공동묘지를 장지로 선택했다.

시라크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겉치레가 요란한 의식이 아닌 국민들과 가족들의 가슴속에서 우러러 나오는 고인에 대한 기억과 추모가 새삼 돋보인 예식이었다.

고인의 운구가 생 쉴피스 광장을 떠나기 전 “아듀! 시라크!(안녕! 시라크!)”라며 연신 눈물을 훔치는 리모주에서 왔다는 18세의 앳된 여학생의 외침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나이·성별·직업·국적을 넘어 시라크 전 대통령은 세계인의 가슴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프랑스 자국은 물론 세계의 공영을 위해 봉사하다가 국립묘지가 아닌 공동묘지에 묻혀 죽어서도 추앙을 받는 시라크 전 대통령, 그는 위대한 프랑스의 정치인이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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