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포면 제석리에 있는 서기 선생의 조부 산소

미산면 옥현리에 가면 경로당 앞에 동네 그림지도를 오석으로 새겨 놓았다. 그 그림지도에 새겨진 서당터를 찾아 동네 뒷산으로 올라가면 산 중턱이면서도 졸졸졸 개울물이 흐르는 곳에 밭 뙤기 하나정도 되는 빈터가 보인다. 아마 이곳이 서당터 인 듯싶다. 동네 노인에게 물으니 아주 옛 날 오래전부터 얘기로만 전해 내려온다는 것이다.

‘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 고을을 가다’(저자 신정일.(주)황금나침판. 2006. p.135)에 나오는 조선 선조시대에 실존했던 학자 서기가 동네 학동들을 가르치던 바로 그 서당터 임에 틀림없다.

위 보령편에 ‘옥현리 서당골(금당골)은 옥현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고청 서기가 가르치던 서당이 있었으며 쇠개울과 못이 있었다’ 는 기록이 있고, 박지화의 묘갈명에 강신당(講信堂)이란 향약소를 만들어 마을사람들의 윤리적 교화를 위해 여씨향약을 행하고자 하였다는 것이며, 문목공 고청 서기선생 사료문집(文穆公 孤靑 徐起先生 史料文集)에 보면 ‘고향에서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자 동네 청년들이 행패를 부려 할 수 없이 폐하고 떠났다’는 기록이 있다.

휘(諱)는 기(起), 자(字)는 대가(待可), (호)號는 고청초로(孤靑樵老), 구당(龜堂), 이와(?窩), 본관(本貫)은 이천(利川), 조(祖)는 승우(承佑), 부(父)는 구령(龜齡), 남포 제석리(현재 제석리에 조부의 산소가 있다)에서 중종18년(1523) 3월20일 출생하여 7세에 동네 서당에서 배우고, 20세에 토정선생을 만나 그 학문을 좇아 주유하였다. 남포 제석리에서 홍주(洪州:광천) 상전리(上田里)로 이거(移居)한 후에는 청라에 기거하는 토정선생에게 배우기 위하여 오서산 중턱을 넘어 20여리 길을 걸어서 수학하였으며, 토정의 천거로 홍성에 머물던 이소제(履素齊) 이중호(李仲虎)대감에게 배우고, 화담 서경덕(花潭 徐敬德) 사상을 수학하여 기학(氣學)에 정통하였으며, 고향에서 향약을 실천하고자 하였으나 동네 청년들의 방해로 단념하고 지리산 홍운동(紅雲洞)에 들어가 4년동안 학문을 연마하였다.

그 후 계룡산자락 고청봉(孤靑峰)아래 공암에 자리하여 18년 동안 후학에 전념하다가 임진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591년 신묘 11월 13일 향년69세때 병으로 하세(下世)하였고 묘소는 반포면 공암리 계룡산 자락 고청봉 아래에 있다.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공주시 반포면 공암(孔岩)은 용두천(龍頭川)의 상류로써 옥계수(玉溪水)가 흘러 태극을 이루며 계룡산 자락과 금강지류가 조화를 이룬 곳으로 연당(蓮堂)과 동굴이 마주하고 있고, 연당 위쪽에 고청봉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고청봉 아래에 서기선생의 무덤이 있다.

앞에는 계룡산 심곡의 맑은 구곡수가 연당 앞에서 잠시 휴회하다가 금강에 역수(逆水)하여 동북으로 꼬리를 감추는 곳으로, 와혈형(窩穴形)의 명당은 그리 넓지 않지만 함부로 범잡(犯雜)할 수 없는 고고함과 한가로움을 갖춘 그런 아늑한 곳이다.

혹자는 조안산(朝案山)이 너무 높고 크다 할지 모르나 주산(主山)자체가 조악하지 않고 앞이 답답하지 않아 조금도 흠이 되지 않는다. 수구사(水口砂)는 조산(朝山)너머 대강(大江)의 암공수(暗拱水)를 부드럽게 맞이하고 음양의 조화를 이루면서 갖가지 모습으로 나열되어 있다.

혈장(穴場)과 입수(入首)모양은 조선중기의 취혈법(取穴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이지함 선생의 후학으로서 당연히 풍수지리에 대단한 식견을 가진 선생이 생전에 박장(薄葬:얕게 묻음)하라고 후손에게 유언한 것을 보면 자기 무덤자리를 스스로 잡은 것이다.

계룡산 자락에 산재한 수많은 명당 중에서 그 당시에는 이보다 더 큰 자리를 점혈(點穴)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외룡(外龍)의 허약함을 무릅쓰고 큰 욕심을 내지 않은 것을 보면 선생의 인품이 짐작된다.

선생은 많은 학자들과 교류를 하였는데 특히 21세 연하인 중봉 조헌(重峯 趙憲)선생과는 도의지교(道義之交)를 두터이 하여 각별 하였다. 천민출신으로 학자가 되기도 어렵거니와 양반사회 사대부들 틈에서 그 시대 출중한 학인들과 교우(交友)하면서 배우고 가르치고 존경과 우의를 다지며 학문을 연구하였다는 것은 조선시대를 통틀어서 실로 대단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사후 영조 임신년(英祖 壬申年)에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에 증직(贈職)되었다가 융희 경술년(隆熙 庚戌年)에 규장각 제학(奎章閣 提學)으로 추증(追贈)되고 시호(諡號)는 문목(文穆)이다. 월사 이정구(月沙 李廷龜)를 비롯한 유학자들이 그를 서원에 배향하여 학덕을 기리며 경모하였다.

유고(遺稿)는 감사 홍계희(監司 洪啓禧)가 친필로 쓴 목판본 한권이 세상에 전하며, 전적들은 모두 일실되어 안타깝게도 전해지지 않는다. 만약 유고가 남았다면 훨씬 높이 평가되었을 것이다.

공암 충현서원(인조때 사액)에 영정이 모셔져 있고 미수기언(眉?記言)에는 호서(湖西)의 선비들이 서고청의 사당을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박약제(博約齊)는 고청선생이 학문을 강론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

충주박씨 가승(家乘)(수옹 諱 朴希聖篇)에 서고청의 학맥 계승사실, 내외자손보(內外子孫譜)에 ‘수옹 박희성(朴希聖)이 서고청 기(徐孤靑 起)에 사사(師事)하니 학문과 도덕이 일세의 사종(師宗)이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김장생 선생에 관한 사계전서(沙溪全書)에는 ’성의(誠意)‘라는 ’意‘ 字에 대한 고청선생과의 문답내용이 기록되었으며, 조중연보(趙重年譜)에 의하면 “융경(隆慶)(明 穆宗)신미(辛未)년에 중본 조헌(重峯 趙憲)이 토정(土亭)선생을 해변으로 방문했다. 토정은 이때 중봉에게 ‘우리 무리 중에는 이숙헌(율곡), 성호원(우계), 송운장(구봉) 세 사람이 있는데 이들 모두가 학문이 고명하고 지극한 행실이 세상의 모범이 되네, 우리 조카 이산보(李山甫)와 우리 문생 서기(徐起) 두 사람 모두가 충신이 기댈 만하고 지성이 금석(金石)을 관통할 만하니 만약에 다섯 사람과 더불어 師友(스승과 친우)를 맺는다면 성현(聖賢)의 지위에 이르지 못할 것을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하니 중봉이 이때부터 우계선생과 율곡선생을 선생님으로 섬기고 구봉과 고청 두 사람에게는 반드시 배례를 하였다” 는 기록이 남아 있다.

▲ 서기선생 조부의 묘비석

또한 택당 이식집(澤堂(李植)集)에 ‘박지화는 서인임에도 박학의 명망이 있었으며 이학의 명망이 있었다. 서기(徐起)는 미천한 신분임에도 경서에 밝고 학도를 가르쳤다.

두 사람이 산수에 유람하기를 좋아하니 모두가 서화담의 학파로서 기괴한 것을 좋아하므로 세상에서 말하기를 박지화는 신선이 되었다 하고, 서기(徐起)는 전지(前知: 미리 아는 것 즉 예언)의 방법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 1 년 전에 고청선생이 예언하기를 ‘명년(선조25년)에 반드시 난이 있을 것이니 적을 피하여 구룡재를 넘지 말 것’을 아들에게 당부하였다 한다.

庚午6月15日 (홍계희)洪啓禧 請 (구봉)龜峯 고청(孤靑) 양현 포증장(兩賢 褒贈狀) -‘宋翼弼(龜峯)과 徐起(孤靑)에 대하여 공주감사 홍계희가 임금에게 추증할 것을 청원하였는데 그 기록이 영조대왕실록(권74 27년辛未 12월朔 癸巳 11일癸卯)에 나온다.

?홍계희(洪啓禧)가 또 청하기를 “서기(徐起)와 송익필(宋翼弼)에게 증직(贈職)하여 주소서”라고 하니 임금께서 말씀하시기를 “자세히 진술해야 한다” 홍계희가 “ 서기라는 이는 즉, 선현(先賢) 이지함(李之?)의 문인(門人)으로서 5,6세에 땔 나무를 하러가서는 늦게 돌아오니 그 부모가 물으매 대답하기를 ‘한 작은 새를 보고 있자니 그것이 양기(陽氣)를 따라서 올라가는지라 그 이치를 연구하느라 늦게 돌아 왔습니다’ 라고 하였다 합니다.

그가 이치를 궁구(窮究)하고 격물치지(格物致知)하는 학문에는 하늘이 낸 천재로서 주자(朱子)를 존숭하면서 학문이 정밀하고 깊습니다. 계룡산의 고청봉 아래에서 거주하여 공주 충현서원에 제향(祭享)하니 호중(湖中)의 학문이 번성함이 서기의 영향력이 많습니다” 하고 “송익필(宋翼弼)은 ........구봉선생(龜峯先生)이라 일컬어줍니다. 이 두 사람은 학덕과 행실이 탁월하나 그 학문이나 지위가 낮고 미미하였음인지 오히려 포증(褒贈)하는 은전(恩典)이 없습니다”. 임금이 말하기를 "마땅히 증직(贈職)한다면 무슨 직으로 해야 하는가” 홍계희가 “선현의 증직을 하자매 집의(執義) 혹은 지평(持平)만 해도 됩니다”. 임금이 그렇겠다고 하면서 세자에게도 이 영(令)을 알리라고 하였다.

이외에도 이득윤의 서계집(西溪集), 동춘선생 유사, 우암집, 월사집, 경서변의, 민헌납 여로의 기록, 사암집 등 동 시대 학자들의 여러 기록이 부분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청선생(孤靑先生)의 학통(學統)은 성리학(性理學)의 한 갈래인 기(氣)를 중심으로 하는 자연철학의 학통으로서 서화담(徐花潭), 이지함(李之函)과 고청(孤靑)을 거쳐 이서계(李西溪)로 이어진다. 임진왜란을 예언하고 택지(擇地)를 한 것으로 보아 주역과 풍수에 밝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설‘토정비결’을 보면 토정선생의 수발을 들던 서기(徐起)가 나온다. 비록 가공된 소설이긴 하지만, 토정 이지함 선생의 시종(侍從)으로 표현하여 폄하한 것을 보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례가 오래 지나면 사실로 천착(穿鑿)되어지는 불행한 역사가 되어 질 것은 자명하고 또 그러한 사례가 비일비재한 현실에서 바로 잡아야 할 일인데도 어떤 문인(文人)이나 학자(學者)도 그렇거니와 향인(鄕人)들의 문외(門外) 또한 너무 깊은 것이 안타깝다(토정선생은 서기를 문하생이라 하지 않고 문생이라 불렀다).

하여튼 그의 저술이나 학문적 자료가 소실(消失)되어 없는 것이 그러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의 행장이나 기록에 단편적으로 드러나는 그의 학문이나 인간적 면모는 깊이 연구되고 기억되어져야 될 일이라 생각하며, 현재 우리의 시대적 정신에 비하면 기꺼이 존숭되어야할 보령 출신 서기선생에 대한 깊은 연구가 있길 기대한다.

세무법인 참길
세무사 신창성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