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수 (시인) (사)한내문학 작가회장

-나도 새 양복 사주셔요- 

통통이는 귀여운 장난꾸러기.
올해가 다섯 살이고 “해마을 어린이집”에 다닌답니다.
세 살 위인 형이 초등학교에 가는 바람에 혼자 다니게 됐어요.

그 동안 형과 같이 어린이 집에 다녔으니까 마음이 든든했지만 이제는 무슨 일이나 혼자 다 해야 해요.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지만 자꾸 걱정이 되요. 저보다 멋진 친구들도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요즘엔 자꾸 통통이가 심통을 부리는데, 꼭 아침에 떼를 쓴답니다.

옷을 입을 때마다 옷장의 옷을 몽땅 꺼내놓고는 입어보고, 벗어보고, 또 다시 입어 보며 이 옷도 싫다, 저 옷 도 싫다! 투정부렸어요. 보다 못한 엄마가 야단을 치면 징징거리며 어린이 집에 갈 때가 많아졌어요.
어린이집에 가서도 걸핏하면 울고, 이웃집에 사는 친구 소망이와도 곧잘 싸웠어요.

“걱정이네. 우리 통통이가 왜 그럴까?”
통통이가 갑자기 왜 그러는지 궁금한 엄마는 선생님과 상담을 하러 어린이집에 가셨습니다.
한동안 선생님과 이야기 하시던 엄마는 빙그레 웃으시며 통통이와 소망이를 바라보셨어요.

“호호, 그러니까 사랑 싸움이네요.”
엄마는 블록 쌓기 놀이를 하고 있는 통통이와 소망이 옆으로 가셨어요.

“친구끼리 서로 위해주며 놀아야지 싸우면 되나?”
엄마는 통통이와 소망이의 손을 잡고 속삭였어요. 동갑내기 파랑반 친구인 통통이와 소망이는 작년에도 노랑반에 같이 다닌 단짝 친구랍니다.

그런데 요즘 왜 자주 싸우느냐고요? 실은 유치원에 예쁜 여자 친구가 새로 왔거든요. 방울이라고 하는 친구인데, 얼마나 귀엽고 예쁜지 몰라요.

통통이는 방울이만 보면 둘이만 놀고 싶었어요. 그런데 방울이는 여러 친구하고 잘 어울려 놀았어요. 특히 소망이하고 잘 놀았어요. 통통이는 제 마음을 몰라주는 방울이 때문에 속이 상했어요. 그래서 괜히소망이에게 심통을 부리다 싸우기도 한 거였어요.

소망이는 통통이처럼 형이 없어서인지 형이 입던 옷을 입지 않았어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친구들 보다 더 좋은 옷을 입었어요. 통통이는 아빠 옷처럼 생긴 양복이 참 멋있어 보였어요.
그것뿐이 아니랍니다.

양복 속에 입은 셔츠는 또 얼마나 멋스러운지 몰라요. 아무리 보아도 통통이가 입은 옷은 소망이가 입은 옷과 비교가 안 되는 것 같아 자꾸만 심통 났지요.

그래서 갑자기 소망이를 ‘확!’ 밀어버리곤, 선생님이 보시면 먼저 소리 내어 더 크게 울어 버리곤 하였답니다.

통통이는 방울이가 소망이를 좋아하는 이유가 옷을 잘 입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린이 집에 갈 때마다 새 옷을 달라고 투정을 부린 거예요. 통통이 옷은 세 살 위에 형이 입다가 작아진 옷들 뿐이었어요.
집에 있을 적엔 형이 입던 옷을 입었어도 상관없지만, 지금은 다 커서 어린이 집에 다니는데 제 맘에 드는 새 옷을 멋지게 입고 뽐내고 싶었어요.

어린이집에 오는 친구들이 얼마나 멋진 친구들인지, 몰라주는 엄마 때문에 더 속상했어요.
파랑반 친구들은 노랑반 동생들과는 다르거든요.

그런데 엄마는 아직도 통통이가 아무것도 모르는 애기인줄로 아나 봐요. 형이 입던 옷을 주면서 자꾸 예쁘다고 둘러대거든요.

이젠 혼자서도 옷을 잘 입을 수 있고, 또 더럽히지 않을 자신도 있는데도 꼭 형이 입던 옷만 챙겨주니 심통이 안 나겠어요?

방울이도 좋은 새 옷을 폼 나게 입고 어린이 집에 가고 싶었어요. 방울이와 친구들에게 잘 보이고 싶거든요. 그걸 모르는 엄마는 자꾸만 형이 입던 옷만 들추면서, ‘옷은 헌옷이나 새 옷이나 똑같다.’고 해요.

사실 형이 입었던 그 옷이, 어떻게 새 옷하고 같을 수가 있어요?
그러니 통통이 속이 더 답답했답니다.
그날 오후에 할머니가 오셨지요.

할머니는 늘 ‘아이고 내 새끼’ 하시면서 통통이를 예뻐해 주시지요.
“울 애기 할미랑 나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재미있게 놀다 올까?”
할머니가 통통이의 기분을 맞춰 주려고 말했어요.

“그래, 나가자.”
엄마도 맞장구를 쳤어요.
“이 옷 입고 나가기 싫어.”
통통이는 할머니 눈치를 보며 입고 있는 제 옷이 마음에 안 든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어요,

“착한 우리 통통이가 왜 그러누?”
할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통통이 얼굴을 들여다 보셨어요. 왠지 심통이 나 있었거든요.

“할머니 나도 소망이처럼 새 옷 사주셔요! 저한텐 맨 날 형이 입던 옷 만 입으라 하고, 엄마는 형만 좋아해요. 그리고 맨 날 형만 새 옷 사주시고 난 헌옷만 입으래요!”
통통이는 불만을 털어놓았어요.

“할머니 이것 보세요. 이 옷도 다 형이 입던 옷이잖아요!”
통통이는 옷장의 옷들을 몽땅 꺼내 놓앗어요.

“나도 이젠 다섯 살이니가 새 옷을 입고 싶어요. 소망이는 맨 날 새 옷 입고 오는데 난 형이 입던 옷만 입고 다니니까, 방울이가 안 놀아 준단 말예요. 그래서 어린이집도 가기 싫어요. 할머니! 저도 새 옷 입고 싶은데, 엄마가 안 사주셔요. 네? 할머니가 새 옷 사주셔요!”
통통이는 할머니에게 매달려 막무가내로 졸랐어요.

“그래, 알았다. 울 애기 할머니가 멋진 새 옷 사줄게 그만 떼 쓰고 나가자.”
“네 할머니!”
통통이는 신이 나서 엄마가 꺼내 놓은 옷을 입었어요. 그리고 할머니 손을 꼭 잡고 팔짝 팔짝 뛰면서 걸어갔어요,

제일 먼저 시장 옷가게에 갔어요, 어린이옷이 아주 많은 멋진 옷가게였어요.
얼마나 멋진 옷이 많은지 통통이는 이 옷, 저 옷, 입어보고 고르다가 진짜로 소망이 옷보다 훨씬 멋져 보이는, 제 맘에 드는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서 이 쪽 저 쪽을 비춰보며 좋아 했어요.

“우리 통통이 이 옷이 마음에 드나보다. 어디보자!”
할머니는 새 옷을 입은 통통이를 살펴 보았어요.
“ 그래, 우리 통통이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지구나!”
할머니는 통통이의 등을 다독거렸어요.

“야호~!”
통통이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통, 통, 통’ 뛰면서 할머니 손을 잡고 다녔어요.

이날, 할머니랑 엄마랑 맛있는 것도 먹고 여기저기 구경도 많이 했지만, 기분 좋아진 통통이 맘속에는 오늘 새로 산 양복을 입고 내일 어린이집에 가는 생각에만 부풀어 있었어요.

방울이가 ‘야! 통통이 새 옷 입으니까 멋있다.’ 하면서 같이 놀아주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왔답니다.
그런 통통이를 보며 할머니도 엄마도 ‘호, 호, 호’ 웃으시며
“우리 통통이도 이제 많이 컸구나.”
하고 흐뭇한 표정을 지으셨어요.

“엄마, 두 밤만 자면 방울이 생일이야.”
“오라, 그래서 그렇게 새옷 타령을 했구나.”
통통이의 속마음을 안 엄마와 할머니는 다시 크게 웃었어요.

통통이가 요즘 부쩍 엄마에게 떼를 쓴 이유도 방울이 생일날은 다가오는데, 방울이의 ‘초대를 못 받을까’ 봐 걱정을 했기 때문이었어요.

소망이랑 방울이랑만 생일축하를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물론 어린이집에 다른 친구들이 몇 명 더 갈수도 있지만 통통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잖아요. 통통이는 방울이 생일날 소망이보다 더 멋지게 차려입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거든요.

통통이는 새 옷을 벗어서 잘 걸어 두었어요. 구겨져서 덜 멋있어 보이면 큰일 나거든요.
방울이는 많이 피곤했는지, 할머니의 무릎에 누워 있다가 금방 잠이 들었어요. 따뜻한 할머니의 체온에 행복한 잠에 빠진 통통이는 꿈을 꾸나 봅니다,

아마 꿈속에서 새 옷 입고 방울이를 만나 재미있게 놀고 있나 봐요. 통통이가 키득키득 웃으며 잠 짓을 하고 있거든요.

<이제 나도 이제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할머니와 엄마에게 확실하게 보여준 뿌듯한 하루였으니까요>
참으로 오늘은 아주 흐뭇한 통통이의 날이랍니다.
그런 통통이를 바라보시는 할머니는 흐뭇한 표정으로
“아이고 우리 얘기가 참 많이도 컸구나!” 하시며 머리를 쓸어 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