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이사 김광호 (주)보령제약

마음이 아프다. 못보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보고도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나간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지나가던 차 안에서도 불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수의사이기 때문이었을까. 맛있는 냉면거리로 알려져 온 오장동의 한 음식점 벽돌담 구석진 곳에 전주 하나가 서 있다.

지나가는 사람의 각도에 따라서는 담과 전주 때문에 사각 지대일 수도 있는 곳에 유기견이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아 기르고 있다. 어미개나 어린 강아지들은 모두 흰색이다. 차로 지나 다니면서 보기에는 다섯 마리쯤 되어 보인다.

적당히 가려져있고 바람도 막을 수 있는 곳인데다가 음식점 옆이니 가끔은 음식점에서 주는 먹이를 맛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명당을 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점 주인 마음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가끔은 어미개가 음식점에서 앞에 내다 놓은 음식 쓰레기 비닐봉투를 입으로 열심히 물어 뜯고 있는 걸 목격 하곤 했다.

물론 음식물을 찾아 먹기 위해서다. 음식점 주인이 좋아 할 리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음식쓰레기가 빠져 나와 지저분하게 될 테고, 냄새까지 나게 될 테니 말이다. 언제까지 저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다. 그래도 어미개와 새끼들은 별일 없는 듯 거기서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였고, 음식점 주인에게는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어미개가 먹을 것을 찾아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찢고 있을 때나 건너편 인도를 따라 어디론가 바쁘게 걸어가고 있을 때에도 강아지들은 서로 자기들끼리 머리를 파묻은 채 평화로워 보였다. 흰 눈처럼 깨끗해야 할 외모는 조금은 지저분해 보였다.

서울의 공기가 깨끗 해 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강아지들의 흰털을 본디대로 유지 할 수 있기에는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이 놈들은 엄마 품이 이세상에서 최고로 편안하고 행복한 자리로 여기고 있을 게다.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알고 있을 게다. 힘도 세고 무엇이든지 모자랄게 없는, 거기에만 기대면 만사가 다 이뤄지는 전지전능한 존재로 느끼고 있을 게다.

엄마가 자신들을 위해서 음식물 쓰레기 봉투 속에 코를 묻고 먹을 것을 찾아 결사적인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퉁퉁 불어있어야 할 젖꼭지는 가늘게 늘어져있고 건조해 보였다.

아래로 얇게 축 늘어져있는 배는 속이 비어있기 때문이다. 안쓰러웠다. 강아지들이 어른주먹크기인 걸로 보면 세상에 나온 지 보름쯤 됐을 것으로 짐작 간다.

어미개가 쓰레기 봉투 속에 버려진 음식물 찌꺼기로 배를 채우고 있는 모습이 어린 강아지들의 눈에는 비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라면 숨겼을 일이다.

엄마는 자신이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서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뒤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가 본능이라고만 말하는가. 동물의 세계를 얼마나 알고 있다고. 또 본능 이건 이성 이건 뭐가 어떻단 말인가. 사람이 잘못 했을 때 때론 개만도 못한 놈이라 한다.

이 어미 개가 이런 말을 들으면, 우리 세상에는 사람만도 못한 놈이라는 말이 있노라고 점잖케 한마디 할 것만 같다. 나중에 새끼 강아지들은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힘없고 가여운 존재라는 걸 알게 됐을 것이다.

자신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 엄마는 저기에 놓인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뒤져야 했고, 그것 마저 안보일 때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차도를 무단횡단 하여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찾아 나서 배를 불려야 했고 돌아와서는 그제야 젖을 물려준다는 걸 알게 됐을 거다.

엄마에 대한 새끼 강아지들의 감정으로 돌아가 본다. 어떤 개들은 집안에서 주인과 침식을 같이 하면서 안락하게 일생을 보낸다. 팔자가 좋아서일까. 아프면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건강해도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는다. 구충제도 먹고 각종 질병에 대한 예방 주사도 맞는다.

고급 사료에다 건강기능 제품도 먹는다. 미장원에도 가며 머리에는 예쁜 리본도 단다. 목욕도 하고 치아의 위생도 유지한다. 우리 엄마는 어쩌다가 이렇게 힘들고도 슬픈 처지에 놓이게 된 것 일까 생각하면서 세상을 원망 하고 있을 것만 같다.

우리 집에서도 다롱이라고 이름을 가진 요크샤테리어 한마리를 기르고 있는데, 믈론 이런 정도는 다 하고 있다. 이 유기견이 처한 상황을 보면서 어쩐지 미안한 생각이 든다. 어린 새끼들을 두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니 우리 다롱이와 비교되면서 돌봐 주지 못하는 마음이 아프기까지 하다.

유기견으로서의 삶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좋은 뭔가가 있을 거라고 믿고 싶어진다. 문득 사람 사는 세상을 생각해 본다. 어려움 없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있고 반대로 삶이 고통인 이들도 있다.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약자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를 생각케 된다. 늘어난 이 유기견 가족들은 머지 않아 그 자리를 떠날 것이다. 그리고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의 방랑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찾아 돌아다닐 모습이 떠오른다. 안쓰럽기만 하다. 모두가 잘 살아남기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목욕 같은 건 못해도 좋으니 말이다.